구름 타고 하늘로 간다네,상여소리의 쿨~한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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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17면

산울림의 2집 앨범과 양희은의 데뷔 앨범. 사진 가요114 제공

누군들 죽음을 흔쾌히 노래할 수 있으랴. 그래서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죽음은 ‘불효자는 웁니다’처럼 부모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 이상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청년문화 시대의 겁 없는 젊은이들은 이 금기를 깨어버렸다.
“엄마 엄마 나 잠들면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바른 곳으로/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 주/ 정든 그 님 오시거든 사랑했다 전해 주.”(양희은의 ‘엄마 엄마’ 1절, 1971, 원곡 ‘클레멘타인’)

이영미의 7080 노래방 <38> 죽음과 마주하며 죽음을 넘어서다

아마 30대 이상의 여성들이라면 이 구전가요를 다 기억할 것이다. 어릴 적 어디선가 얻어듣고 따라 부르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도. 4란 글자조차 불길해 하는 사회에서 어린애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저 ‘매를 버는’ 일이었건만 이 노래는 수십 년 동안 구전됐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을 수 없지 않은가. 나도 6, 7세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내가 죽으면 내 위에 관 뚜껑이 덮이고, 내 몸은 해골로 변하는 건가?’ ‘죽으면 가족들과도 영영 만나지 못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된 때가 말이다. 이런 나이가 되면서 아이들은 어른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몰래 이 노래를 배우고 불렀을 것이다.

이 ‘금기의 노래’를 스무 살 앳된 처녀가 음반에 수록했다. ‘아침이슬’이 처음 발표된 양희은의 데뷔 앨범이었다. 그래도 음반으로 만들 때에는 ‘엄마 엄마 나 죽으면’이란 원래 가사를 ‘엄마 엄마 나 잠 들면’으로 순화(!)했으니 검열을 의식한 최소한의 성의(!)는 보인 셈이다. 이렇게 1970년대 대중가요에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은 죽음과 노래로 대면하기를 시도했다. 71년 문정선이 테너 프랑코 코렐리의 목소리로 유명한 ‘그대 창에 등불 꺼지고’를 음반에 실은 것도 범상치 않다. 노래가 인간의 삶을 담는 것이라면 죽음이라고 노래의 소재가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죽음은 최고의 비극성을 만들어내는 치명적 매력이 있으니, 더욱 더 노래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떠나는 우리 님 편히 가소서/ 보내는 마음은 터질 듯하오/ 어야디야 어여쁜 우리 님 가시는 먼먼 길에 흰 국화 만발해라/ 어야디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방긋 웃는 그 얼굴은 영 떠나버리누나/ 어야디야 꿈이더냐 생시더냐 청천하늘 벽력도 이게 무슨 말이더냐/ (하략).”(산울림의 ‘떠나는 우리 님’, 1978, 김창완 작사·작곡)

록이 상여소리에 착목한 것은 참 신선했다. 기발한 발상이라면 둘째 가라 해도 서러울 정도인 산울림의 작품이다. 일요일 아침에 어른들이 야단하실 게 뻔한데도 나는 참지 못하고 이 음반을 전축 턴테이블에 걸었다. 죽음을 노래하는 상여소리는 록의 샤우팅과 겹쳐지면서 매력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김창완의 바이브레이션 없는 가창은, 오히려 ‘쿨해서’ 더 슬펐다.

록의 샤우팅이 죽음과 ‘맞짱 뜨는’ 노래는 종종 나왔다.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도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고 노래했고, “하늘이시여 구구만리 떨어진 곳…님을 지켜 주소서”했던 김수철의 ‘별리’도 너무도 절절해 사별(死別)의 느낌을 풍겼다.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죽음과 대면하는 최고의 노래는 이들 세대가 중·장년에 다다른 90년에 나온 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이다.

“간다 간다 내가 돌아간다/ 왔던 길 내가 다시 돌아를 간다/ (후렴)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잎 진다 설워 마라/ 명년 봄에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한 번 간 우리 인생 낙엽처럼 가이 없네/ (후렴)// 하늘이 어드메뇨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라/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로구나/ (후렴)// 하늘로 간다네 하늘로 간다네/ 버스 타고 갈까 바람 타고 갈까/ 구름 타고 갈까 하늘로 간다네/ (후렴)// 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 1995, 장사익 엮음)

그리 새롭지 않은 전래의 상여소리를, 국악인의 박제화된 목소리가 아닌 장사익의 목소리로 “버스 타고 갈까 바람 타고 갈까” 하며 부르니 아주 새롭다. 이 노래는, 처음에 슬프게 시작하다가 중반을 넘어가며 점점 신이 난다. 그러다 절정에 도달한 마지막 구절 뒤에 장사익은 대사를 덧붙인다. “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라고.
죽음이 신나다니, 놀라운 반전이다 싶지만, 실제 전통의 상여 느낌이 이렇다. 집을 나설 때에는 통곡 속에서 출발하지만, 상두꾼의 요령 소리에 발맞춰 걷다 보면 나중엔 상여가 너풀거리며 춤을 추듯 가고 있다. 장례의 마지막 절차를 이렇게 신명 속에서 치러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상갓집에서 화투판을 벌이는 한국인의 낙천적 죽음관(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 대중가요 관련 저서로『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광화문 연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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