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명예보다 돈' 프로들 올림픽 불참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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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순수 올림픽 정신은 정녕 한물 갔는가.

9월 15일 막을 올리는 새천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상당수 프로선수들이 호주행 포기를 잇따라 선언, 해당 국가와 협회는 “메달 전선에 차질이 생겼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80년대부터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전면 허용된 이후 올림픽 무대는 아마추어리즘보다 개인적,금전적 이익이 우선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추세.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 안나 쿠르니코바(19)는 1일 마티나 힝기스(19·스위스)에 이어 불참을 발표했으며 NBA 스타 팀 덩컨도 같은 날 공식적으로 대표팀 합류를 거절했다.

이어 한달전 윈블던 단식우승을 포함, 그랜드슬램대회에서 사상 최다인 13회 우승의 위업을 세운 세계 남자 테니스 랭킹 1위 피트 샘프라스도 데이비스컵에 이어 올림픽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해 미국테니스협회(USTA)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반면 최근 정상 컨디션이 아닌 안드레 애거시는 96애틀랜타올림픽에 이어 2연패를 선언, 대조를 이루었다. 미국남자팀 스탠 스미스 감독은 “큰 경기에 강한 애거시가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한몫을 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반겼다.

불참 프로 선수들은 특히 테니스에서 두드러져 홈팀 호주의 헬레나 도키치는 “올림픽선수촌 대신 집에서 왕복하고 아버지에게 코치면허증을 발급하며 스폰서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 착용을 허용할 경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고 큰소리쳐 시드니 조직위원회를 아연케 하기도 했다.

이제 반세기전 인디언 출신으로 단돈 5달러를 받고 잠시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한 전력 때문에 육상 금메달을 박탈당한뒤 사후에 복권된 짐 도프의 이야기는 아득한 전설로 남게 됐다.

이들이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심드렁해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회기간 2주일간은 물론 합숙훈련까지 한달 이상 허비(?)하면서 단 한푼도 챙길수 없다는 금전적 이유가 첫번째로 각국 협회에서 훈련 보조금 명목으로 나오는 돈은 이들의 요구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자본주의 돈맛에 물든 프로선수들은 이제 상금 한푼없이 국가를 대표하는 ‘형식’에 무관심한 것이다.

56∼68년까지 올림픽 육상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낸 바 있는 앨 오터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현상”이라며 “4년에 한번 열리는 일생일대의 올림픽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려면 뭣때문에 운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프로골프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구설에 오른바 있다. 지난해 매사츄세츠주에서 벌어진 미국-유럽 국가대항전인 99라이더컵을 앞두고 미국팀 주전 타이거 우즈와 데이빗 듀발은 “라이더컵에서 남는 막대한 이익을 선수들에게도 분배해달라”고 엄포를 놓았으며 특히 듀발은 대회불참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팀 캡틴 벤 크렌쇼는 “나는 그들이 이미 자신의 조국을 대표해 뛸수 있는 영광만으로도 충분히 보상 받았다고 생각한다. 당신들 선배들을 보라. 돈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가. 더군다나 한번도 라이더컵 멤버로 뛰지 않았으면서 돈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있다” 듀발을 간접적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결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경기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무차별로 허용한 프로선수의 참가가 되레 집단 불참을 야기하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21세기 스포츠 위상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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