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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아름다운 성은 금기가 아닌 절제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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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중요한 발견은 그의 나체였으며, 최초의 발명은 무화과잎의 앞치마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인간의 본성에 눈뜬 순간 알몸임을 깨닫고 무화과로 앞을 가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과 기원을 연설한 내용이다.

이 연설처럼 인간은 알몸을 감추듯 욕망을 절제하면서 문화를 가꾸어 왔다. 인간이 본능적 욕구에만 매달린 채 살아왔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능을 조절하고 치부를 가리는 것, 즉 하지 말아야 할 금기를 스스로 만들고 지키는 가운데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의 성문화가 지존파를 넘어 막가파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우리사회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몰래카메라류의 비디오 테이프와 극장용 성인영화를 보면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큰소리로 찾으면 예술이고 진열장에서 조용히 꺼내면 외설이라는 말이 있지만, 최근에는 도발이라고 할 정도로 그 표현은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집단혼음과 미성년자의 섹스는 물론 성기 절단, 시신과의 섹스 등 비정상적 성행위가 여과 없이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면서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혼란을 겪는 현실인 것이다.

사이버 세상의 오염은 더욱 심각하다. 클릭만 하면 수천만권에 달하는 도색잡지와 비디오테이프가 인터넷이라는 포르노 창고에 비치되어 관음증을 부추기고 있다. 더욱이 청소년들이 주된 소비층인 뮤직비디오도 요즘에는 그 강도가 더 높아져 유혈이 낭자한 폭력과 선정성이 결합된 ‘하드코어물’이 범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래시메탈그룹 ‘크래쉬’의 4집 ‘Failure’는 총알이 살을 관통하는 엽기적인 장면과 여인의 상반신을 그대로 노출시킨 욕조신, 남녀가 뒤엉킨 베드신 등을 여과 없이 담고 있다. 노컷 영상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공중파와 케이블방송용은 편집 과정을 거쳐 공개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노출의 수위에 있다.

또 이에 질세라 여가수들의 선정적인 신체 노출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여성 듀오 ‘허쉬’의 뮤직비디오는 수영복을 입은 두 여가수의 허리 아래 부분을 클로즈업해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이 문제가 돼 방송사로부터 방영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른바 ‘야한 장면’을 담은 뮤직비디오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김건모·엄정화 뮤직비디오는 요즘 쏟아져나오는 것들과 비교해 보면 그래도 양반축에 든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온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자살을 미화하는 등 영상물 표현의 한계는 이미 없어진 듯하다.

이런 금기의 벽에 도전했던 조관우의 ‘Angel Eyes’의 경우 방영금지라는 철퇴를 맞았지만, 분위기나 가사와 전혀 상관없이 비치는 선정성과 금기의 미화는 눈길을 끌기 위한 ‘깜짝쇼’나 다름없으며, 제어장치를 상실한 극단적인 표현법은 뒤틀린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다.

몇년 전부터 몰카로 대표되는 관음증, 미성년자와의 원조교제 등 뒤틀린 우리 사회의 일면을 돌아볼 때 그 원인의 하나는 바로 건전하지 못한 성의식에 있다. 성은 성스러운 것이다. 성을 통해 사랑이 확인되며, 나아가 종족을 번식하는 것이다. 그런 성이 가치를 잃고 흔들리는 바탕에는 무분별한 노출과 금기 없는 표현도 한몫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금기를 ‘금기’( 禁忌)
라고만 보지 말고 ‘절제’( 節制)
임을 생각할 시기다.

김재영 비뇨기과원장·남성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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