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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K2] 히말라야 14좌완등 엄홍길 인생 中

중앙일보

입력

나는 1960년 경남 고성의 자그마한 갯마을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와 도봉산에 터를 잡고 가게를 열었다.

이 가게집에서 우리 식구는 30년 이상을 살았으나 지난 6월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가게를 철거하는 바람에 이제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산악인에게 모산(母山)이 있다면 내 모산은 도봉산이다. 집 뒤 두꺼비바위에서 암벽을 타는 클라이머들의 모습은 어린 눈에도 부럽게 보였다.

우리 집은 두 채로 나뉘어 있었다. 가게는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가족 모두가 나서 손님을 맞을 정도로 바빴다.

가게에서 팔 물건을 20~30분 거리에 있던 주차장에서 등짐을 지고 나르다 보니 몸이 단련돼 또래 친구들보다 체격이 좋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술.라면 등을 들고 다니며 야영객들에게 팔아 용돈을 벌었다.

중학교 때 2년간 유도를 배웠으나 고등학교 입학 뒤에는 권투도장을 다니다 아마추어복싱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재미삼아 시작했지만 끝을 보자는 마음에서 출전했다가 1차전에서 판정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악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산에서 만난 홍영길(46.록&아이스벨트 대표).장재순(45.써미트 대표).임창일(46.스포츠용품점)선배와 함께 80년 거봉산악회를 만들었다.

이후 군 입대까지 설악산 희운각 산장에 눌러앉았으며 설악산 계곡과 능선을 오르내렸다. 여름이나 겨울 훈련을 위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설악산으로 들어왔고 덕분에 많은 산사나이들을 알게 됐다.

81년에는 장마철 급류에 떠내려가던 신흥사 스님 등 세명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 천불동계곡에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마침 신흥사 부근을 지나는데 "사람 살려" 라는 외침이 들렸다. 지프를 타고 개울을 건너다 불어난 물에 쓸려내려가는 그들을 로프로 몸을 묶은 뒤 급류를 헤치고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희운각 산장에서 같이 생활하던 선배는 그날 등산객들의 성화에 못이겨 하산하다 비선대에서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그해 가을 나는 해군에 지원 입대해 인천에서 입출항 검문검색 부대에 배치받았다. 군 생활이 따분해질 무렵 잠수복 차림에 공기통을 메고 오는 부대원과 마주쳤다. 해난구조대(SSU)였다.

주위에서 "편한 곳 놔두고 왜 고생하러 가느냐" 며 만류했으나 결국 수중폭파대(UDT)에 지원했다. 6개월간의 UDT훈련을 수료하는 인원이 지원자 중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훈련은 혹독했다.

1주일 내내 잠은커녕 옷과 군화도 갈아신지 못하고 고무보트를 머리에 인 채 식사하기도 했다.

제대한지 10년이 지난 96년 6월 나는 UDT 선.후배 12명과 함께 독도 바다밑에 '여기는 한국의 최동단 독도' 라는 동판을 남겨놓았다.

인간의 내재된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UDT 훈련은 히말라야 원정 도중 극한상황에 부닥쳤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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