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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가 서울대 갔어요” 경사 난 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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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대에 합격한 진도 조도고 3학년 김빛나 양과 그의 담임인 조연주 교사.

“영어로 된 소설 원서를 틈틈이 읽은 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최근 서울대 외국어계열(영어교육학과) 수시모집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합격한 김빛나(18)양. 그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뱃길로 30~40분 달려야 닿는 조도에 있는 조도고등학교가 1981년 문을 연 이후 처음 배출한 서울대 합격생이다.

 조도 주민은 모두 3000여 명. 조도고는 3학년 학생이 16명, 전교생은 28명에 불과하다. 섬에 학원은 물론 서점이나 문방구도 없다. 김양이 이뤄낸 성과가 ‘작은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는 이 곳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김양은 사교육 의존도가 특히 높은 외국어영역에서 특히 좋은 성적을 보였다. 한 문제를 틀려 만점에는 실패했지만 1등급을 받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섬에 온 서울 친구의 유창한 영어에 매료된 뒤부터 영어 공부에 빠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어로 된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어요. 어려워서 반복해 읽으면서 MP3로도 들었죠. 이후 스태프니 메이어의 소설 『트와일라잇』과 『오만과 편견』 『엠마』 등 20여권을 영어 원서로 읽었어요.”

 그는 “문제만 풀면 답만 외우게 되지만, 소설을 읽다 보니 듣기와 말하기 실력까지 는 것 같다”며 “영어 소설 덕분에 기초가 튼튼해졌다”고 말했다. 김양은 점심 시간에도 헤드셋을 끼고 영어를 들었다. 부족한 부분은 TV와 인터넷을 통해 공부했다. 김양은 “CNN 뉴스와 아리랑TV를 자주 봤다.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계속 들으니 귀가 열렸다”며 “교육방송과 인터넷 강의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에 꼭 가겠다’는 목표 의식도 김양을 채찍질했다. 그의 별명은 ‘의자왕’이다. 오전 7시 등교해 밤 12시 하교할 때까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아서 붙여졌다. 추석과 설 연휴는 물론 , 체육대회가 끝난 오후 시간에도 자정까지 공부했다. 조도에 딸린 더 작은 섬인 칠도의 발전소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 김동명(48)씨의 형편 때문에도 학교에서 책과 씨름하며 스스로 공부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도움도 컸다. 지난해 이 학교에 부임한 김준호(57) 교장은 급식소를 만들어 학생들이 점심·저녁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교사들은 수업이 끝나면 1대 1 과외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담임인 조연주(46·여) 교사는 저녁식사를 거르거나 빵으로 떼워 가며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제자들을 돌보고, 주방 아줌마 노릇을 하기도 했다. 조 교사는 “34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지난해 빛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해낼 재목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육가를 꿈꾸는 김양은 자신처럼 소외된 지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멘토가 돼 주고 싶다”며 “교사로 학생을 가르칠지, 교육행정 분야를 공부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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