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 민주당’ 정체성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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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정당사에서 또 하나의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당이 어제 전당대회에서 시민통합당과 합당할 것을 의결한 것이다. 이 합당에는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진보 시민사회세력도 가세하게 된다. 현재의 민주당은 2007~2008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을 부수고 만든 정당이다. 선거용으로 만들어진 당이 다시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해체·확대되는 것이다. 새 당은 민주당 당명을 계속 쓰게 된다.

 새 민주당이 유권자에게 답할 첫 번째 의문은 정체성이다. 야권 세력은 전국정당을 만든다며 2003년 가을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이 쇠락하자 2007년 차별화를 위해 열린우리당을 사실상 해체하고 지금의 민주당을 만든 것이다. 시민통합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총리와 비서실장을 지낸 이해찬·문재인 등 노무현 재단 측과 영화배우 문성근 등 김대중·노무현 지지 강경 진보세력이 급조한 정당이다. 두 당이 합당하면 노무현을 버렸던 민주당이 원조·핵심 노무현 지지세력과 합치는 것이 된다. 이는 2003년 민주당을 버렸던 열린우리당 세력이 2007년 다시 민주당과 합친 것과 같다. 그동안 서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인지, 정책·노선에 변화가 있는지, 앞으로 노무현의 유산은 어떻게 승계할 것인지 유권자는 어리둥절하다. 정체성 혼란은 민주당 당원도 마찬가지여서 합당결의 과정에서 폭력 충돌까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야권은 지난해 6·2 지방선거부터 무조건적인 후보단일화에 매진했다. 몇몇 지역에서 효과가 나자 이 새로운 시스템은 확대 발전했다. 급기야 지난 4·27 재·보선 때는 오차범위 내 여론조사로 단일화하기까지 했다. 지난 10·26 선거에선 단일화 경선으로 박원순 후보를 만들어 성공했다. 이제 내년 총선·대선이라는 본격적인 정권 대결을 앞두고 야권은 합당을 선택한 것이다. 새 민주당은 내년 선거에서 통합진보당과 선거 연대를 이룰 것이다.

 한국 정치는 정권에 대한 평가나 정책·노선보다는 ‘집권 전술’에 따라 춤을 추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실적으로 정권 쟁취는 정치세력에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는 하다. 하지만 목표 앞에서 수단과 방법이 쉽게 선택되는 세태가 우려된다. 이런 현상은 야당뿐만이 아니다. 극심한 추락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에서도 당을 해체하고 다른 세력과 합쳐 새 당을 만들자는 주장이 쉽게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은 당의 역사나 정체성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선거용 꼼수만 구사하려는 편의적 발상이다. 걸핏하면 당명을 바꿔 유권자의 눈을 속여보려는 것도 비슷하다.

 정권은 여야 사이에서 오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순리적이고 선진적이어야 한다. 명분과 절도가 있어야 한다. 여든 야든 정권 획득을 위해서라면 과거도, 정체성도, 미래정책도 아랑곳 않는다면 그런 정권싸움은 사회의 도덕적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