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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경질 … 축구 때문인가 ‘축구정치’ 때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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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일 경질된 조광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조광래(5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황보관(46)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8일 서울시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표팀의 경기력과 운영을 볼 때 조 감독 체제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21일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조 감독은 1년5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그는 대표팀에서 12승6무3패를 기록했다.

 조 감독에 대한 경질설은 지난달 15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서 부진한 경기 끝에 1-2로 진 뒤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1위인 한국이 146위인 레바논에 졌다는 소식은 FIFA 홈페이지에 소개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패배로 한국의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황보 위원장은 “(조 감독을) 잘 보내드리고 싶다”며 구체적인 경질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조 감독이 독단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등 리더십에 결함이 있고 경기에서는 전술 운용에 실패해 선수들의 결속이 와해되는 등 대표팀이 큰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 감독은 프로축구 경남FC에서 함께 일한 브라질 출신 가마(43) 코치를 지난해 12월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이후 “조 감독이 가마 코치하고만 회의를 한다. 다른 코치들의 의견은 듣지 않는다”는 얘기가 대표팀에서 흘러나왔다.

조중연 축구협회장

 국가대표팀의 훈련장에서는 1군과 2군이 나뉘었다. 경기에 출전할 선수들은 조 감독이 직접 전술을 가르쳤다. 나머지 선수들은 박태하(43) 코치와 함께 다른 운동장에서 훈련했다. 열등반에 들었던 몇몇 선수는 소속 팀 감독에게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는 푸념도 했다. 국가대표팀이 기피 대상이 된 것이다.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염기훈(28·수원)·김정우(29) ·이동국(32·전북) 등은 출전 시간, 무리한 포지션 변경 등으로 조 감독과 갈등하다 대표팀을 떠났다. 베테랑 이영표(34)의 패스 방향을 하나하나 지적할 정도로 간섭이 심해 특히 고참들과 갈등도 심했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국가대표팀 감독 경질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하지만 조 감독의 경질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선 대표팀 감독 선임과 해임을 다루는 기술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기술위원장과 부회장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결정했다. 조 회장은 기술위원장으로 일하던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네덜란드에 0-5로 지자 차범근 감독을 현지에서 경질한 일이 있다.

 차기 축구협회장 선거(2013년 1월)에 앞서 축구계의 파벌다툼이 경질을 불렀다는 의견도 있다. 현 축구협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재야 그룹에 속한 조 감독이 무난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경우 재야파의 존재감만 부각될 뿐 현 집행부에는 도움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협회 수뇌부가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경질 배경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나이키를 비롯한 대형 스폰서와 국가대항 경기 중계를 하는 방송사의 압력을 받아 축구협회가 떠밀리듯 서둘러 대표팀 감독 교체를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해 국민의 관심을 잃으면 매년 대표팀에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스폰서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차기 계약에서 협회가 받을 스폰서 금액도 줄어든다. 황보 위원장은 “그런(스폰서)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여운을 남겼다.

 한편 조광래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이 조기축구회 감독이냐”며 “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김종력 기자

12승6무3패 감독 교체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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