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현대중공업 '전자와의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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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들은 이번 현대전자.증권을 상대로 한 소송 사태를 "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부실 계열사를 함부로 지원해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건" 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씨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받은 적이 없다" 며 이번 사태를 '형제간 다툼' 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무력한 줄로만 여겨졌던 사외이사들이 오너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징조" 라고 해석했다.

사외이사들은 '캐나다 은행(CIBC)에의 보증에 대한 처리 방안' 이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된 19일부터 강력히 개입했다.

이후 24일까지 25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격론 끝에 사외이사들은 계열사인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은 물론 최대주주인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손실 부담까지 요구했다.

사외이사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부실 계열사에 지급보증을 서거나 증자에 참여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외이사들의 '5박6일' 〓사외이사들은 19일 처음 사건의 개요를 접했으며 24일 현대전자와 증권에 "현대중공업의 결손에 양쪽이 책임지되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구상권을 행사하겠다" 는 확약 요구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19일 이사회〓사외이사들은 "CIBC 보증에 관한 처리방안은 당초 이사회 안건에 없었지만 이사회 도중 의장인 조충휘 사장이 이 안건을 상정하면서 '너무 미묘한 사안이라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랬다' 고 말했다" 고 밝혔다.

조사장은 또 그동안 현대전자와 증권에 대납을 요구했지만 전자는 "사장이 출장 중" , 증권은 "왜 이리 야단이냐" 는 답변만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사외이사들은 "전자와 증권으로부터 확답을 듣기 전에 CIBC에 돈을 줘선 안된다" 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20일 이사회〓조사장은 "오늘 CIBC에 지급해야 한다" 며 "어제(19일) 교섭했지만 신통한 답을 듣지 못했다" 고 설명했다.

사외이사들은 "한번 더 교섭하라" 고 요구한 뒤 전자 등으로부터의 회신을 기다렸다.

CIBC은행의 서울지점장도 옆방에서 종일 기다렸으며 외환은행의 송금 마감시한도 두 차례 연장했지만 전자 등으로부터 어떤 답도 듣지 못한 채 현대중공업의 대외신인도 추락을 우려해 사외이사들은 대지급을 결의했다.

▶21일 이사회〓사외이사들은 현대증권의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어음을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배서는 하지 않겠다고 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24일 이사회〓CIBC로부터 현대투신 주식이 입고되면서 사외이사들은 25일 증권거래소에 공시할 경우의 충격을 논의했다.

사외이사들은 또 결손이 나면 전자 등이 책임을 져야 하며 정몽헌 회장과 박종섭 전자사장.이익치 증권회장이 공동서명하되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구상권을 행사하겠다는 최종 결의문을 채택해 두 회사에 보냈다.

이날 저녁 鄭회장으로부터 개인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답변이 왔지만 친필 서명은 하지 않겠다고 해 사외이사들은 지난 25일 사건공개를 결의했다.

◇ 독립경영의 신호탄〓사외이사들은 "투명 경영을 위해 사외이사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발휘한 전환기적 사건" (박진원 이사), "계열사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에서 벗어나 독립경영을 하자는 취지" (박준환 이사)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은 "앞으로 계열사 지급보증은 물론 증자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 것" 이라며 "다른 재벌 기업 사외이사들에게 자극제가 됐으면 한다" (이선호 이사)고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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