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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도장팀장 김혜진, 18세 소녀 제자 삼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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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5일 서울 서초동 아우디 공식딜러 서비스센터에서 김혜진 팀장(오른쪽)이 지연이(가명)에게 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 녀석아, 이거 하면 결혼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김혜진(42·여)씨는 지연이(18·가명)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지연이는 머리를 문지르며 “포기 안 해요. 팀장님이 뭐라고 해도 전 할 거예요”라고 대꾸했다. 3주 동안 지연이는 만보계로 하루 2만2000보를 뛸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고, 8시간 동안 섭씨 42도 도장(塗裝) 부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지연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김씨는 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다. 그는 수입차 아우디의 공식딜러 서비스센터 도장팀 팀장이다. 정비 부문에 있는 40여 명의 직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국내에서 여성 도장 전문가는 5명도 채 안 된다. 수입차 쪽에선 김씨가 유일하다. 김씨는 “이 일만큼 노력한 결과가 그대로 나오는 작업이 많지 않다” 고 말했다.

 김씨가 처음부터 도장 전문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야구광이었다. 경희대 체육학과 재학 당시 소프트볼 국가대표라는 꿈도 이뤘다. 1988년 예기치 않게 소프트볼을 그만두게 되면서 끝이 안 보일 만큼 방황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동차 정비 공장 관리직으로 취직했다. 그런데 도장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다짜고짜 도장반장을 찾아가 “1년만 배우게 해달라”고 우겼다. 처음엔 도장반장이 “여자가 부스에 들어오면 화재가 난다”며 거절했으나 “일주일만 배우겠다”고 한 것이 천직이 됐다.

 김씨가 지연이의 첫 만남은 지난해 사회복지 재단인 ‘SK행복나눔재단’에서 운영하는 ‘해피 카(Happy car)스쿨’에서였다. 해피카스쿨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자동차 관련 전문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연이와 여기서 멘토·멘티의 인연을 맺었다. 김씨는 “가정 환경 때문에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연이 가족은 치킨집을 하다 정리한 뒤 지금은 이렇다 할 수입이 없 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지연이는 중학교 때부터 줄곧 장래희망이 ‘자동차 정비사’였다고 했다. 지연이는 “김 팀장님과 첫 만남 때부터 ‘여자가 하기엔 너무 힘들다’며 반대를 하셔서 더 오기가 생겼다”며 웃었다.

글=이지상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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