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역 1조 달러의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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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나라 교역이 1조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국·독일·중국·일본·프랑스·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에 이어 9번째다. 세계사(史)적으로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로선 처음 이뤄낸 금자탑이다. 수출품도 과거의 철광석·텅스텐·가발에서 반도체·자동차·스마트폰 같은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변신했다. 이른바 주변(周邊) 국가가 대외 개방과 인력 양성을 통해 당당하게 중심부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디딤돌 삼아 ‘2조 달러 클럽’을 향해 다시 한번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는 수출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수출이 경제 성장의 중심축이었다. 숱한 경제 위기도 수출 확대를 통해 뚫고 나왔다. 중동과 중국·동유럽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마다 수출전사들이 앞다투어 달려나가 길을 닦았다. 대외 개방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 기업들은 이제 글로벌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하지만 빛이 밝은 만큼 어둠도 짙다. 매년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동안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게걸음을 해왔다. 경제 성장을 통해 얻어지는 부가가치가 수출 대기업에 편중되면서 사회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과 내수 부진은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암울한 현실이다.

 하지만 수출과 내수는 대립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보완 관계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앞으로도 수출 중심의 경제 성장이 불가피하다. 이제 수출 기업들은 ‘2조 달러 클럽’을 향해 신발 끈을 다시 매야 한다. 동시에 서비스 수출 확대를 통해 상품 수출에 치중해온 교역 구조도 개선시켜야 한다. 내수와 수출의 균형 성장(均衡成長) 없이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내수를 키우고 서비스 수출을 늘리려면 과감한 대외 개방과 규제 완화가 유일한 길이다. 서비스 산업도 경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키워온 수출기업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의료·관광·교육 등이 효율성을 갖춘다면 엄청난 수출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정치적 이해에 얽매여 서비스산업을 계속 온실 속의 화초로 가둬둔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이제 선택을 고민하기보다 행동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