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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 좋은 31곳 중 21곳 입찰 `0`

조인스랜드

입력

[김혜미 기자] `이 지역은 철거예정 계획이 없으니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3일 찾아간 서울 서초동의 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허물다 만 2층 건물을 둘러싼 공사 가림막엔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시행사가 2007년 주상복합단지로 개발하려고 금융권에서 3000억원을 대출 받았다가 사업이 중단된 곳이다. 1만5000㎡(4537평)에 이르는 널찍한 땅에는 빈 건물 몇 채가 섬처럼 남아있었다.

이 중 한 곳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송 모(57) 씨는 “몇년 전 시행사가 입주자에게 돈을 퍼주며 나가라고 해서 모두 빠져나갔다”며 “공사도 중단된 지금은 완전히 ‘유령도시’ 같다”고 말했다.

캠코가 인수한 PF 채권 8조원, 정리된 사업장은 1조원

인근 부동산 주인도 “당시는 부동산 거품이 한창 심할 때라 저축은행 쪽에 한 달 30억원이 넘는 이자를 물면서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행사가 세 차례나 용도를 변경해 가며 추진한 사업계획은 번번이 지자체로부터 퇴짜를 받았다.

사업이 중단된 뒤 저축은행 23곳이 빌려준 대출 채권 1500억원은 두 차례에 걸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 넘어갔다.

이렇게 캠코가 인수한 저축은행의 PF 채권액은 7조원이 넘는다. 캠코가 우선 장부가의 70% 수준으로 채권을 사들인 뒤 보유하고 있다가 길게는 5년 이후 저축은행에 되파는 방식이다. 그 기간 중 사업 정상화나 매각을 통해 자금이 회수되면 캠코와 저축은행이 이익이나 손실을 분담한다.

하지만 2008년부터 지난 6월까지 3년간 캠코가 인수한 채권 8조3000억원 중 정리된 사업장은 1조원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캠코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토지 매입이 끝나기 전에 브리지론 형태로 자금을 빌려준 데다 사업성에 맞지 않는 큰 금액을 대출해 준 바람에 사업을 재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캠코도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정상화가 가능한 곳을 골라 프로젝트관리회사(PMC)를 세우고 투자자 모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성과는 신통찮다. 최근에도 위탁받은 360개 사업장 중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한 31곳을 매물로 내놨지만 2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해 입찰이 성립된 곳이 10군데에 그쳤다.

이들도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부동산은 원래 기대심리가 있어야 성공하는데 지금 부동산 시장은 실수요자밖에 없다”며 “건설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뛰어들 사업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출 22.6%가 연체 지난해 1.5배

현재 캠코가 실사를 마친 저축은행 PF 사업장 중 토지매입을 100% 끝낸 사업장은 94곳으로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10곳의 사업장 중 6~7곳은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사업 승인이 난 곳도 채 절반이 안된다.

박선숙 의원은 8월 저축은행 국정조사에서 “PF사업이 진척되지 않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올해 말까지 저축은행이 적립해야 할 관련 충당금 1조 8849억원의 적립기간을 2014년까지 연장해준 것은 폭탄을 돌려막기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PF와 관련된 저축은행의 속병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정상영업 중인 90개 저축은행의 부동산 관련 대출의 연체율은 22.6%로 1년 전 11.8%의 두배에 달했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연체기간이 3개월 넘은 부실채권 비율)도 같은 기간 11.8%에서 21.9%로 급등했다.

예보 관계자는 “캠코가 사들여 정상화를 돕고 있는 PF채권을 감안하면 현재 저축은행이 부동산 관련 대출에 의존하는 정도는 41.4% 정도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발표한 저축은행 경영실적이 흑자로 전환됐다고 해도 부동산 PF발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안종식 금융감독원 저축은행 감독국 국장은 이에 대해 “저축은행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지표로 나타난 상황보다 실제가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며 “한 번 나빠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위험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어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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