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첨단예술 전수받는 조승호씨

중앙일보

입력

레이저 아트의 달인(達人) 백남준(白南準·68)씨로부터 첨단예술을 전수받고 있는 문하생 조승호(趙承鎬·40)씨는 한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1988년 미국에 온 이래 비디오 아트로 말을 바꿔탔다.

사람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성격 때문에 뉴욕 한인예술인 사회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백남준씨는 중앙일보와의 회견(19일 13면)도중 앞으로 본인의 비법을 전수받을 꿈나무로 조씨를 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자가 조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백선생님이 조씨를 후계자로 정했다"는 말을 전하자 조씨는 "백선생님께서 나의 체구에 비해 너무 큰 옷을 입히시는 것"이라며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어여삐 여기는 것 뿐이지 더도 덜도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작품성이 백선생님의 반의 반도 못되는 내가 이를 어떻게 감당해낼지 머리가 욱신욱신하다"며 겸손해 했다.

그러나 백씨가 사람 보는 눈이 과연 예리하다는 사실은 조씨의 경력과 주변인물들의 입을 통해 금방 입증됐다.

조씨를 잘 아는 뉴욕의 한인 예술가들은 "조씨는 백선생 이외에는 한인이 포진해 있지 않은 뉴욕의 비디오 아트계에서 끌어 줄 선배 등 인맥이 없어 고생고생 하다가 미국 비디오 아트계가 조씨의 섬세한 기법을 인정해 뒤늦게 홀로 선 늦깎이 예술인"이라고 평한다.

실제 조씨가 작품전 다운 작품전을 연 것은 지난 97년이었다. 그러나 첫 작품전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갖은 탓에 뉴욕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조씨를 빗대 "늦게 태어난 아이가 건강한 법"이라며 부러워하고 있다.

최근 3년동안 조씨의 전시경력은 화려하다. 97년 MoMA 비디오작품 전용실(3층) 전시회 개최, 98년 호놀룰루 현대미술관 전시회, 2000년 1월 뉴욕 휘트니미술관 미국현대 미술인 1백명 초청전 참가 등 전세계에서 명함 꽤나 내밀 수 있는 예술인들만 주로 전시하는 곳에서 작품을 전시했기 때문이다.

스승 백남준씨는 뉴욕의 3대미술관중 휘트니와 구겐하임 두 곳에서, 문하생인 조씨는 휘트니와 MoMA의 문을 두드린 셈이다.

"뉴욕대에서 비디오 아트로 전공을 바꿀 때는 백선생님이 계신 줄도 모르고 덜렁거리며 시작했으나 입문 직후 한국이 배출한 대가가 있다는 현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뿌듯함을 느끼게했던 분이 나의 형편없는 실력을 인정해 주셨다니 어깨가 실로 무겁습니다. "

조씨는 "백선생님의 작업을 거든 적은 있지만 백선생님의 후계자라는 말을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앞으로 백선생님과는 다소 다른 동양적인 섬세함을 내세운 신레이저 아트세계를 구축, 백선생님과 차별된 예술세계를 펼쳐나감으로써 은혜에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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