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거리에서 ‘예산 수술대’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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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파행으로 치닫는 건 이미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오늘로 법정 처리 시한이 지나면 올해도 관례를 지키는 일관성(?)을 보여주게 된다. 유럽 위기로 재정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복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해 내년도 예산심의는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도 국회는 허송세월 중이다.

 민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표결 강행에 항의하고 비준안 폐기를 주장하며 예결위 활동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나라 살림과 민생을 정치 투쟁의 볼모로 삼는 행위다. 국회법에 따라 안건을 원칙 처리한 것과 예산안 심의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히려 자신들이 주창하는 민생복지 확대와 FTA 피해산업 지원을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예산심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지난해에도 민주당은 예산심의를 봉쇄했다. 4대 강 사업 관련 ‘친수구역 활용 특별법’을 막는다며 국토해양위를 점거했다. 이미 절반 넘게 진행된 4대 강 사업을 포기하라며 본회의 예산통과도 막았다. 그래서 예산안은 법정시한을 넘기게 되었고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은 정기국회 폐회 전에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회의장을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된 해였는데도 야당은 여지없이 파행을 재연한 것이다.

 지금 국회 예결위에는 326조원에 달하는 정부예산이 올라와 있다. 여기에 상임위 심사를 거치면서 11조5000억원이 더 붙어 있다.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복지와 지역개발사업을 늘렸기 때문이다.

 예산안은 지금 여야의 지혜로운 칼을 기다리고 있다.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고 합리적으로 재원을 배분해야 하는 중요한 과업이 남아 있다. 민주당이 갈 곳은 불법시위가 벌어지는 길거리가 아니라 냉정하게 칼을 잡아야 할 예산 수술대다. 민주당은 신속히 예산심사에 합류해 정기국회 폐회(9일) 전에 예산안이 합의 처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철수만 바라보지 말고 스스로 집권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