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심은 1억 그루, 인도네시아 관료들 ‘성지 순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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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도그룹이 칼리만탄주(州) 중부의 팡칼란분에 조성한 조림지. 서울의 약 1.5배 되는 땅 위에 하나하나 나무를 심었다. 조림지 한복판에 있는 산불감시용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눈에 보이는 곳은 대부분 코린도 소유의 조림지다. [팡칼란분=양원보 기자]

지난 9월 2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1시간여 만에 칼리만탄주(州) 중부의 팡칼란분 상공에 진입했다. 도처에 안개가 자욱했다. 착륙이 임박해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농지와 숲 곳곳 서 불길이 타올랐다. 화전(火田)에서 피어오르는 연무(煙霧)였다.

 원주민들은 우기(10월~이듬해 3월)가 시작되기 전 농사를 위해 땅 위의 모든 걸 불태운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팡칼란분의 풍경은 처참했다. 화전으로 불탄 검은 땅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나머진 잡초로 이뤄진 덩굴 숲이거나 야자유 생산을 위한 플랜테이션 농장이 고작이었다. 원래 밀림이 우거졌던 자리들이다. 공항을 떠나 코린도그룹의 조림지(造林地)로 향했다. 코린도그룹은 30여 개 계열사와 2만5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한국계 기업이다. 연매출은 13억 달러로 인도네시아 재계서열 20위권에 올라 있다.

 2시간여를 달리자 검게 그을렸던 공항 주변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듯했다. 조림지의 산 정상에 세워진 산불감시용 전망대 위에 올랐다. 순간 한눈에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광활한 숲이 펼쳐졌다.

 코린도그룹 자원사업부의 정세용 차장은 “숲의 넓이가 서울의 1.5배(9만5000ha)”라며 “1997년부터 14년간 나무 1억 그루를 ‘한국인의 손’으로 차곡차곡 심었다”고 자랑했다. 숲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봤다. 목재·합판재로 쓰이는 유칼립투스 펠리타와 펄프 재료인 아카시아 망기움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매년 10%씩만 베어내도 250만t에 달하는 엄청난 목재를 얻는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땅에선 또 다른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임업이 펼쳐지는 현장이었다.

 코린도그룹은 조림사업 분야에서 인도네시아 4위권이다. 현지 최대 재벌인 시나르마스(SINARMAS)그룹은 코린도의 4배가 넘는 땅에서 나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고위관료들이 성지순례하듯 다녀가는 곳은 코린도의 조림지다. 최근 이곳을 찾은 산림부 장관은 “전국 33개 주에 코린도 조림지가 한 곳씩 생겼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생산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벌채한 나무를 옮기는 ‘임도(林道)’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코린도는 조림지 곳곳에 총연장 2500㎞의 도로를 깔았다. 경부고속도로(428㎞)의 6배가량이다. 흙을 다지고 그 위에 자갈을 뿌렸다. 비가 와도 차 바퀴가 진흙에 빠질 일이 없다. 물류에서 앞서다 보니 단위면적당 생산량에서 경쟁기업을 압도한다.

 지속가능한 ‘과학 조림’은 조림지 내 연구센터가 그 중심지다. 유칼립투스와 아카시아의 우수 품종을 찾아내 그 클론(복제물)을 대량 생산한다. 우수한 형질의 ‘어미나무’에서 조그만 싹을 증식시켜 수십만 종자를 배양한 뒤 양묘장에서 3개월가량 키워 현장에 옮겨 심는다. 특히 곧게 자라 활용도가 높은 ‘유칼립투스 클론’ 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심은 지 3년밖에 안 된 나무가 18m나 자랄 만큼 성장 속도도 빠르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코린도그룹은 현재 인도네시아 합판 생산량의 30%, 종이 생산량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팡칼란분=양원보 기자

◆ 이 기획기사는 산림청 녹색사업단 복권기금(녹색자금)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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