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타성적 성문화에 도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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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라는 영화를 보면 여자와 남자가 연예를 하면서 서로 고백을 한다. 각자가 몇 명과 섹스경험이 있었는지를 그 상황과 느낌까지 상세하게, 매우 즐겁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이 바로 정확한 서구 사회의 성윤리 분위기다."

성 상담서를 겸한 신간〈사랑은 진할수록 아름답다〉에는 전통적인 성윤리를 고집하는 우리사회 도덕군자들이 들으면 대경실색할 만한 얘기가 줄줄이 나온다.

저자가 세계적인 성 심리학자이고,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의 유명한 한인 교수라니까 대강 넘어가려 하는데, '진도' 는 점점 더 나간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저자 홍성묵은 자신은 지금껏 서양사람들을 상대로 수도 없는 성상담을 해봤지만, 처녀성을 문제삼았던 남자와 여자는 단 한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 동양적 문화인 처녀성-순결 콤플렉스는 '이제는 막을 내려야 할 논쟁' 이라는 도발적인 주장 등이 그것이다.

'진도' 라는 표현을 했지만 저자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강도 내지 발언의 수위는 아마도 지금껏 나온 단행본 중 최고조의 것에 속할 것이다.

물론 농담이지만, 근엄한 한국의 검찰이 이책의 외설을 문제 삼아 혹 칼을 뽑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노파심도 은근히 생긴다.

다행스런 것은 책 전체에는 합리적인 판단, 전문적 지식에 힘입은 사려깊은 언어선택 등이 있고, 바로 이런 덕목에 힘입어 이 책은 우리의 타성적인 성문화를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몇몇 목차만 훑어봐도 그렇다.

'동거를 하려면 떳떳이 하라' '나의 섹스를 버전업하자' '잠자는 공주에겐 키스 대신 섹스를' '사랑에 관한 고정관념의 파일을 삭제하라' '바꿔, 생각을 다 바꿔-잘못된 성지식을 바로잡자' '사랑에도 급수가 있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자' .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카섹스와 관련한 이런 식의 상담과 서술 내용은 저자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

몇 해 전 귀국해 한강 부근을 돌 때 택시기사가 한 곳을 가리키며 '카섹스의 유명한 장소' 라며 혀를 찼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

저자는 외려 신선한 충격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젊은이들도 차를 가지고 다닐 만하게 살 만큼 살게됐다는 점이 그렇고, 젊은이다운 욕구를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즉석 공간으로 카섹스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대신 카섹스가 '숨어 먹는 포도맛' 일 수도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저자는 핸들 만지던 손을 닦을 수 있는 물수건이나 티슈를 챙길 것과 주차를 제대로 할 것 등 구체적인 처방과 조언을 던져준다.

책은 편안한 서술방식이라 피서지에서 씨익 웃으며 읽어도 좋을 듯싶다.

저자는 고려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뉴질랜드에서 성심리학을 전공했다.

자신이 한국의 기독교 집안 출신이고, 따라서 훨씬 개방적인 외국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성상담을 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 흥미롭다고 밝힌 그는 현재의 한국사회가 옛 윤리의 틀은 없어지려 하고 있으나 새로운 성윤리의 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성의 아노미 상태' 라고 진단한다.

이번 책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유학생들과 억지춘향 식의 상담을 하면서 느낀 부채의식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밑줄 쫙 긋고 곰곰 새겨볼 대목은 이렇다. '깊이 생각하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행복한 성을 찾으라' .

저자 이메일은 s.hong@uws.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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