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토 반납한 ‘변두리 학교’ 김경환 열정, 수시서 일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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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명호고 김경환 교사(가운데)는 수학심화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주말마다 상위권 학생들을 지도한다. 이 학교 다른 교사들도 ‘학이시습지’라는 학습지를 자체 제작해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다. [부산=송봉근 기자]

학생은 국가의 미래다. 학교 교육이 튼실해야 인재들이 구김살 없이 자란다. 학교가 무너졌다는 일부 우려도 있지만 열정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많다. 입시가 복잡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원에 매달리지만 “우리가 할 수 있다”며 묵묵히 학교 경쟁력을 살찌우는 교사들,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는 교장들이 그 주인공이다. 학부모들도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며 교실을 바꿔놓고 있다. “나는 교사고, 교장이고, 학부모다”라고 외치며 학교에 희망을 불어넣는 이들을 만났다.

부산 명호고 3학년 절반 수시 합격

부산 명호고 김경환(58) 수학교사는 공식 직함이 진학전략팀장이다. 교사 가운데 ‘전략’이 붙은 직책을 맡은 이는 드물다. 그는 “올해 3학년생 227명 중 133명이 입학사정관제 등 수시 1차에서 합격했다”고 말했다.

 명호고는 부산 강서구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공립학교다. 2009년 문을 열 때 학생들이 지원을 꺼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 명문고도 입학사정관 전형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명호고는 달랐다. 올해 서울대 특기자전형에 무시험으로 1명이 합격했고, 포스텍과 울산과기대에도 각각 2명과 1명이 붙었다. 서울 상위권대에 합격한 학생도 10명이 넘는다. 김 교사는 “서울대가 2013학년도부터 수시로 80%를 뽑겠다는데 학교가 준비하지 않았으면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며 “입시 향배를 파악하는 것도 교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는 입시자료를 모으기 위해 매일 오전 6시30분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한다. 주말에는 두 시간씩 상위권 2, 3학년을 대상으로 ‘수학심화학습동아리’를 운영했다. 토요일에 고난도 문제를 내주고 토론 과정을 거쳐 일요일에 풀이법을 알려준다. 부산 금곡고에서 근무하던 때부터 주말을 반납한 지 8년째다. 수능이 끝난 직후 동아리 학생들에게 수리 논술·면접 강의를 해줬다. 김 교사는 “8년 전 부모가 병석에 누워 입시 준비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던 제자를 보고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집 식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학에 합격한 뒤 ‘고맙다’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생활을 멈출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청이나 교육과학기술부 행사에 발품을 팔아 입학사정관제가 강화되는 기류를 읽었다. 동아리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줬다. 활동 자료를 책으로 만들어 대학에 내도록 도왔다. 추천서는 김 교사와 담임이 머리를 맞대고 작성했다.

 다른 교사들도 동참했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교사들이 매주 자체 제작한 과제학습지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전교생에게 배포한다. 15쪽 분량의 학습지에는 그 주에 배운 교과 관련 예습·복습 자료와 영어단어 연습지가 들어 있다. 학생들이 자율학습 때 풀면 교사들이 걷어 첨삭 지도를 해준다.

 이런 노력으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영어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지난해 32%에서 올해 75.9%로 뛰었다. 김 교사는 “교사의 자질이 우수하기 때문에 나서기만 하면 학교가 사교육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의 일방적인 헌신만 기대해선 안 된다”며 “열심히 하는 교사들에게 강의료를 줄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잡무 부담을 줄여주는 등 근무환경을 개선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시 동성중 한경화(43·여) 교사는 주말과 평일 점심시간에 논술을 가르친다. 3년째 학생 20여 명을 뽑아 독서토론동아리를 운영한다. 한 교사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사고력을 키우는 데 가장 기본”이라고 말했다. 동아리 학생들이 글쓰기, 논술, 토론대회에서 입상하면 특목고 지원용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에 이런 장점을 꼼꼼히 반영해 줬다. 지난해 이 학교에서는 충남외고 3명, 충남과학고 1명, 충남한일고 1명의 합격생이 나왔다. 모두 이 동아리 소속이었다.

 그의 실험은 다른 교사로까지 확대됐다. 동성중은 2009년부터 방학에 외국어교실, 특기적성교실, 대학생 멘토링교실 등 과목별 캠프를 진행한다.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수준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올 여름방학에는 재학생의 90%가 참여했다. 학업성취도 평가 우수학력 학생 비율은 지난해 14.7%에서 올해 23%로 높아졌다. 학부모 전현숙(43)씨는 “방학 때면 다른 학교 아이들은 서울의 학원을 다니지만 동성중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팀=김성탁(팀장)·이원진·윤석만·김민상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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