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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j섹션 연재 『리투아니아 여인』 장편으로 펴낸 이문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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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소설가 이문열씨가 새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을 냈다. 다국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과 연상의 한국인 남성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이씨는 “사랑 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 소설”이라고 했다. [김도훈 기자]

소설가 이문열(63)씨. 한때 이 땅의 소설계(界)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런 표현이 큰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를 고스란히 관통하며 그의 소설은 위세가 대단했다. 소재와 주제의 다채로움은 물론 화려하면서도 빈틈 없는 그의 소설 문장은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였고, 숱한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평론가 유종호씨는 이미 90년대 초반에 그를 ‘젊은 거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좀처럼 쓰지 않는 수식어다.

견고해 보이던 그의 문학 성채에 균열이 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보수적인 내용의 신문 칼럼이 몰고 온 파장이 컸다. 하지만 그는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며 대립각을 오히려 가파르게 세웠다. 이씨 스스로 『시대와의 불화』(92년 이씨의 산문집)를 넘어 “시대적 왕따였다”라고 표현한 우울한 세월이었다.

 이씨의 새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은 그런 과거를 청산하기로 작정하고 쓴 작품이다. 소설은 본지 토요섹션인 j에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연재됐다. 연재 전 인터뷰에서 그는 “다국적 정체성을 갖춘 주인공을 통해 땅과 피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양상의 사랑을 그려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적 이념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별난 사랑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거였다.

 15일 오후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씨 자택을 찾았다. 1년 여 만이다. 소설 얘기, 근황 등을 들었다.

 -연재 전 인터뷰에서 “앞으로 문학에 전념하겠다”고 했었는데, 그런 뜻대로 잘 됐나.

 “지난 10년간 보수논객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소설책을 내면 문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문열이 책을 쓴 사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맷집 좋은 사람도 잔매를 계속해서 맞다 보면 지치게 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작품을 쓰고 싶었다. 내 소설 초기의 낭만적 감수성으로 돌아갔다고나 할까, 좀 거창하게 말하면 문학으로의 작은 귀환이다.”

 -소설은 사랑 이야기면서도 혼혈 여주인공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비중 있게 다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서 한 사람의 혈통이나 국적, 정체성을 따지는 일은 이제는 무의미하다. 요즘이 그런 시대다. 갈수록 노마드(Nomad·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 현대적 의미의 유목민)화가 진척되고 있다. 그런 걸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노마드적 기질의 소설 여주인공은 사랑 문제에 관한 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문화적 이질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인 것 같다. 혈통·국적이 다른 남녀의 경우 이질성을 극복하겠다, 하는 생각이 지나쳐 그런 결심을 끊임 없이 의식하는 게 일종의 피로가 되는 상황 말이다. 가령 부부 사이에는 서로 참아줘야 할 일이 많게 마련이다. 대개는 체념하고 살고 따라서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질적인 출신의 남녀가 만나면 그렇지 못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은 연극연출가이고, 여주인공이 뮤지컬 음악감독이다. 연극·뮤지컬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번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고민하는 예술가에 관한 소설이다. 일종의 유미적 주제랄까. 그런 이야기를 여주인공을 내세워 길고 처연하게 하려다 보니 가벼운 사랑의 모티프를 집어넣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문학에만 전념할 작정인가. 정치적 시비를 부를 만한 작품은 쓰지 않겠다는 건가.

 “이미 기획돼 있고 구상을 마친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이전과 같은 시비를 부를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들인가.

 “70∼80년대 근대화를 다룬 대하소설 『변경』이 끝난 게 아니다. 속편을 쓸 생각이다. 김유신을 주인공으로 한 처연한 역사소설도 준비 중이다.”

 -작가들 창작공간인 부악문원에는 누가 들어와 있나.

 “무명 문인 대여섯 명이 입주해 있다. 마침 오늘 김장하는 날이다. 이들과 함께 급변하는 요즘 미디어 환경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해볼 생각이다.”

신준봉·위문희 기자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은 ?

소설의 여주인공 김혜련(헬렌 킴)은 외할머니가 리투아니아 출신이다. 그가 미국으로 데리고 간 딸이 한국인 남성을 만나 낳은 딸이 혜련이다. 혜련은 어려서 부산에 살았으나 또래들의 차별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혜련은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모두 익숙하다. 성인이 돼서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다.

 이런 혜련의 동선은 여러 모로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을 연상시킨다. 이씨는 이런 추측을 부채질한다. ‘작가의 말’에서 “연재 직후 그녀가 우리 사회의 문화 아이콘으로 떠올라 소설 쓰는 데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박칼린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소설은 김혜련과 열살 쯤 나이 많은 남성 연출가 ‘나’ 사이의 20년 사랑이 이야기의 뼈대다. 이에 대해 이씨는 “실존 인물을 여주인공 모델로 삼았을 뿐 소설에 나오는 사건과 갈등구조는 100% 허구”라고 밝혔다. 소설을 현실로 오인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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