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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판 ‘거마대학생’ 다단계 사기 2만7000명이 1400억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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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500만원의 등록금이 없어 휴학한 대학생 K씨(23·울산시)는 지난 2월 초 고교 동창으로부터 “3~6개월만 노력하면 월수입 500만원을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울산시 삼산동에 있는 다단계업체 W사 울산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W사의 팀장은 ‘무허가 불법 다단계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서울시가 발행한 다단계 판매업 등록증을 내밀며 교육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K씨는 “교육에 참가하면서 ‘이게 내가 갈 길이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 측이 소개한 비법은 800만원을 대출받아 이 중 500만~600만원으로 물건을 구입하면서 새로운 회원 2~3명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새 회원들이 다시 다른 회원을 끌어들이는 것을 몇 단계만 반복하면 K씨는 다이아몬드 클래스로 승격해 월 500만~600만원의 안정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K씨는 팀장의 안내에 따라 연 44%에 달하는 금리 조건으로 대출 신청서를 작성해 서울의 대출중개업자에게 팩스로 보냈다. 중개업자로부터 “학자금 대출이라고 하라. 방판이라는 말은 꺼내지 마라”는 등 지침을 받고 나자 한 저축은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떨결에 “방판…”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대출 담당자는 “그러면 안 된다”며 다시 상담을 했다. 통화가 녹음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K씨는 이렇게 800만원을 대출받아 회사 측이 제시하는 화장품·시계·건강식품 등을 샀다. 그날부터 K씨는 온종일 새 회원 모집에 전념했다. 그러나 K씨는 한 달 만에 이를 포기했다. 회원 확보는 안 됐고 이자와 교통비 지출만 늘었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이 회사의 회원이 된 J씨(27·여·서울)는 14개월 만에 다이아몬드 클래스가 돼 680여만원을 받았다. 그가 확보한 회원들이 다시 새 회원을 끌어들였고, 이를 통해 W사가 7500만원의 물품을 판매한 덕분이었다. 그러던 J씨도 올해 4월 대출금 800만원을 갚지 못한 채 탈퇴했다. 매달 신입 회원을 확보해 수당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 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W사는 2009년 1월~2011년 8월 2만7000여 명의 회원에게서 1인당 평균 518만원씩 총 140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2만7500원에 구매한 흑홍삼겔을 회원에게 29만7000원에 판매했다”며 “시중가의 10배로 물건을 구입한 대학생들은 이를 정상적으로 되팔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W사의 매출 규모는 지난 9월에 일어난 거여·마천동 대학생의 다단계 피해 사건 때보다 크다. 당시 대학생 5000여 명은 거여·마천동에 모여 살면서 다단계 판매에 참여해 250억원의 피해를 보았다. W사의 경우도 회원 가운데 53%가 대학생이나 휴학생으로 추정되는 22~24세였다. 대다수가 학자금 대출 명목으로 구입 대금을 빌렸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W사를 수사해 왔던 울산 남부경찰서는 회사 임원 등 46명을 검거하고 대표이사 A씨(54) 등 3명에 대해 방문판매업법위반 혐의로 16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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