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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유쾌한 반란을 꿈꿔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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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호 31면

살면서 가장 지독한 회의는 30대 초반에 왔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남 보기에는 괜찮았던 유학 생활이었는데 두 번째 학기 끝 무렵, 말할 수 없는 위기감과 공허감이 엄습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문제의 정체조차 알지 못했고 고민은 점점 깊어갔다. 요약하면 결국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 찾기였다.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공부하려 하는가.

성적이나 학위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답이 필요했다. 답을 찾지 못하면 ‘시험공부 하는 기계’로 전락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몇 개월을 고민해도 해답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급기야는 이제껏 살아온 인생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왜 공직을 택했는가. 힘들게 유학을 온 것은 ‘스펙’을 쌓기 위함이었는가.

그 과정에서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주위나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고 살아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때의 위기감이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래서 힘이 들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야겠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그것은 내 속의 고정 틀을 깨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일이었다.

그러고는 20년도 더 지났지만 이 고민이 비단 내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다섯 명 중 세 명 이상이 가능하다면 전공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의 직업 선택을 후회한다고 한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사회는 성공의 길이 너무 정형화(定型化)되어 있다. 명문대나 특정학과, 특정 직업·직종에 학생과 구직자가 몰리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만큼 가치가 일원화돼 있다는 의미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이렇게 짜인 ‘틀’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성공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가도록 몰아넣고 있다.

이런 ‘틀’은 이제 깨져야 한다. 성적 좋은 ‘책상물림’보다 공부가 떨어지더라도 엉뚱한 학생이 나중에 사회에 더 기여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직종이나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건강한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 활력을 더 불어넣을 수 있다. 요컨대 성공의 경로가 다양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책적인 노력이 유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든다면 1차선 도로에 줄을 세우는 것 같았던 대학입시 제도의 개혁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입학사정관제 같은 것들이다. 창업을 활성화하는 정책도 좋은 예다. 내년 예산에 청년전용 창업자금을 신설하고 실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채무조정제도를 일부 도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 가치의 변화를 포함할 경우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성세대가 이미 기존의 틀 내에서 사회화(socialized)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청년들의 ‘유쾌한 자기반란’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바로 주위나 사회가 아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다. 스스로 의사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훈련을 자기 생활 속에서 반복해야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신을 다양한 시행착오의 무대에 올려놓아야 한다. 많은 실패를 겪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익숙한 것, 그래서 편한 것들과 결별하는 자기 내부의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자기 틀을 깨는 동시에 자기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그런 노력을 계속하면, 단순히 전공이나 직업을 고르는 문제(what)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how)를 고민하는 다음 단계의 ‘반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 시절의 고민은 축복이다. 자신 속의 틀이 더 굳어진 뒤라면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하거나, 고민을 하더라도 그 틀을 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해서 깨지고 새로 형성된 ‘틀’은 끊임없이 다시 깨져야 한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했던 질문을 지금도 다시 던지곤 한다. 아니, 아마도 평생을 반복해서 던져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김동연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2008년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미시간대 정책학 석·박사.덕수상고 졸업 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1982년 행정·입법 고시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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