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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섹스의 역사〉의 원제는 〈섹스 만들기(Making sex)〉다.

이것은 '만들어진 성'의 이야기, 다시 말해 젠더(사회.문화적 성)가 섹스(생물학적 성)를 지배하고 구성해온 과정에 대한 보고서이며 남성의 성적 지배와 여성의 성적 종속이라는 제도적 필요에 의해 수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얼룩져온 몸에 관한 이야기이다.

섹스의 역사에서 순수하게 자연적인 의미의 섹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젠더의 구분은 언제나 섹스의 구분에 선행했다. 인간의 몸은 섹스의 영역이 아니라 젠더가 자신의 욕망을 양식화하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성적 정체성이 자연이 아닌 문화의 영역에 속한 문제라는 것은 이제는 상당히 보편화 된 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양식화된 성적 정체성의 논리가 자신의 정당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연, 즉 인간의 몸으로부터 논리의 근거를 얻어내려 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저자는 고대에서 근대로 이르는 기간 동안 인간의 몸에 대한 인식은 '한 가지 몸' 에서 '두 가지 성' 으로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과학의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고대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성의 역사를 주도해온 것은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성적 기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한 가지 몸' 의 신화였다. 물론 그 몸의 표준이 되는 것은 남성의 몸이다.

서구의 고대인들은 여성의 성기는 밖으로 돌출된 남성의 성기를 안으로 뒤집어 놓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여성은 열이 적기 때문에 성기가 밖으로 밀려나오는 대신 안쪽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몸은 불완전한 남성의 몸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성의 차이가 아니라 성의 위계를 증명하는 이러한 관점은 르네상스 시대에 성행했던 해부학에 의해 더욱 완고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의학의 발달에 따라 여성의 성기는 남성 성기의 불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단순히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위계는 차이로 바뀌고 여성의 성은 젠더에서 섹스로 귀환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 대한 발견은 여전히 젠더의 세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근대 이후 인간의 몸에 대한 과학적 접근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를 끈질기게 지배해온 남성〓강한 성, 여성〓약한 성이라는 젠더의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보이는 것' 을 결정하는 것은 관찰의 정확도가 아니라 '보고 싶은 것' , 바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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