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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프로그램이 재미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MBC 〈사랑의 스튜디오〉의 시청률이 꽤 높았던 모양이다. 얼마전부터 같은 시간대 SBS와 KBS2에서도 〈러브게임〉과 〈접속 해피타임〉이라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요일 아침 늦으막히 일어나면 좋든 싫든 짝짓기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확률이 3/4 이나 된다.

언제부턴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이 오락 프로그램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누가 폭탄이 될까 궁금해 했던 '서바이벌미팅' 코너, 어머니들에게 사윗감과 며느리감을 점 찍는 재미를 주는 SBS 〈생방송 행복찾기〉의 '사랑의 스위치' 코너, 지금은 없어졌지만 매주 두 남자 진행자가 괜찮은 직업과 미모를 가진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던 '못말리는 데이트', 그리고 본격적으로 TV가 중매장이로 나선 〈기분 좋은 밤〉의 '결혼합시다' 코너 등등. 짝짓기 프로그램은 구성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20대 미혼 남녀의 짝짓기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짝짓기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많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짝짓기 프로그램의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것은 어찌되었건 짝짓기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리모콘 조작 속도를 늦추게 하는데 일단 성공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나라고 예외이겠는가. 일요일 아침에는 오히려 3개 방송사의 기발한 짝짓기 프로그램을 두루 섭렵하기 위해 화면 탐색을 하는 내 손가락이 더 바빠질 지경이다. 그러나 막상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고 그저 그렇다. 내 노력이 좀 부끄러울 정도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타이밍을 맞춰 가며 짝짓기 프로그램 앞에 앉아 있는 걸까?

내가 짝짓기 프로그램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프로그램 결말에 누가 누구와 짝을 이루는가 또는 짝짓는 과정에서 어떤 질문이 오고 가는가 때문이 아니라 프로그램 초반에 소개되는 출연자들의 신상명세 때문이다. 즉 이름·나이·직업·출신 학교 등 한 사람의 실체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회적인 꼬리표들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만약 〈사랑의 스튜디오〉에 출연한 남녀 출연자들이 자신의 정체라고 불리울 만한 모든 것을 숨긴 채 그저 질문 몇 마디와 OX 퀴즈, 그리고 화살표로 커플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도 정말 재미있을까?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연출되는 만남은 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의도된 만남이나 허구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가 전혀 알지는 못하지만 나와 똑같은 보통 사람인 누군가의 실제 만남이다. 남녀의 만남·연애·사랑, 이런 것들이 브라운관과 작가의 상상을 뛰어넘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러브스토리가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나는 벌써 주인공이 되어 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감 있는 '짝짓기'는 방송의 영역을 넘어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점차 파고든다. 그런데 일상화된 '짝짓기 문화'는 그 재미만큼이나 박탈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와 내 주변, TV에서 추구되는 모든 짝짓기 과정은 '커플'만이 '정상'이라는 각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커플이 아니면 비정상이요 커플만이 정상이라는 커플 문화는 20대에게 '미혼(未婚)'이라는 갑옷과 짝짓기 프로그램의 예비 출연자가 될 자격을 부여한다. "당신은 더 늦기 전에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갑옷을 뚫고 나와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도 함께 부여한다.

뿐만 아니라 커플 문화와 TV에서 그려내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각본은 커플 산업과 결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미혼'이라는 품목에 적당한 가격표를 붙이는 결혼 시장, 한 번에 두 개를 소비해야 하는 커플 산업(커플 상품은 두 개가 한 쌍이다). 그래서 솔로를 고집한다면 문제가 있다. 짝짓는 우리들의 재미를 위해서, 결혼 시장의 적당한 수요 공급의 법칙을 위해서 그리고 커플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비혼(非婚)'은 곤란하지 않은가.

어느 새 우리 사회에서 미혼이라는 단어는 20대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비혼인(非婚人: 결혼을 안 한, 또는 안 할 사람)' 마저 모두 '미혼인(未婚人:결혼을 아직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 당신도 낭만적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어서 누군가를 만나라고 속삭이는 사회, 커플만이 정상이며 짝 없는 사람은 위로 받아야만 사회. 이 모든 것들이 짝짓기 프로그램에 들어있다. 그래서 짝짓기 프로그램은 보면 볼수록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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