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와 동성애자의 실존적 사랑 그려

중앙일보

입력

사춘기 시절이었습니다. 한참 사랑과 성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해 있을 때 말입니다. 제 경우는 주로 최인호 님의 소설이 그러했는데, 밀도 있는 베드신 장면의 매혹을 못 잊어서, 그 페이지를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보곤 했어요. 얼마 지난 뒤에는 책의 옆 부분에서 보면 그 부분만 까맣게 보이더군요. 누가 볼까봐 부끄럽기도 했지요.

사랑과 성을 다룬 소설들에는 반드시 그런 야한 장면이 나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봤던 책이 있어요. 제목을 밝히기 어려운 세 권짜리 대형 소설이었는데, 그 소설의 섹스 장면이 너무 야해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이 책에서는 다른 것은 볼 필요 없고, 이 장면만 보라고 너스레를 떨며 읽힌 적도 있어요.

소설보다는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더 많이 알려진 〈거미여인의 키스〉에도 그런 정사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정사 장면은 야하거나 추하지 않습니다. 앞 뒤 부분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부분만을 따로 떼내어 보면 유치하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공연한 흥분도 일으키지 않아요. 그러나 그렇게 많은 소설들의 섹스 장면 중에서 참 오랫 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남게 됩니다.

〈거미여인의 키스〉의 그 섹스 장면은 남자와 남자의 동성애 섹스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결코 야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지문은 하나도 없이 대화로만 이루어지지요. 그런 까닭으로 섹스 장면 역시 아무런 묘사 없이 그냥 섹스 중에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로만 표현됩니다.

정사 중에 나누는 대화라는 게 뭐가 그리 야하겠어요? 그저 유치하겠지요. 그런데 이 책의 섹스 장면은 야하지도 유치하지도 더럽지도 않습니다. 두 쪽 정도에 이어지는 그 장면은 아름답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라는 생각이 제게 든 겁니다.

감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섹스의 두 주인공은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가지는 두 남자입니다. 하나는 아르헨티나의 좌익 혁명운동의 주역인 게릴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 동성애자인 '거미여인' 몰리나 입니다.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는 차가운 감방 안에서 처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적대시합니다.

특히 게릴라인 발렌틴은 몰리나를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며 멸시합니다. 그러나 따뜻한 여성적 감성을 지닌 몰리나는 어떻게든 발렌틴에게 의지하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몰리나는 끊임없이 수다를 떱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몰리나는 더없이 심심한 감방 안에서 발렌틴에게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그러나 발렌틴은 건성으로 듣습니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발렌틴이 몸살처럼 설사를 동반한 배앓이를 하게 됩니다. 그때 몰리나는 정성을 다해 발렌틴을 간호하지요.

그 과정에서 몰리나를 무시해 왔던 발렌틴도 몰리나의 사람에 대한 태도에 감화를 받게 되고, 마침내는 동성애자로서의 몰리나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몰리나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가장 깊게 사랑함을 증거할 수 있는 행위에 이르게 됩니다. 그게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섹스 장면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 두 사람이 동성 섹스를 하며 나누는 짧은 대화들에는 바로 그러한 진정한 사랑이 엿보입니다.

서로를 다칠까봐 아주 살금살금 조심조심 서로에게 깊숙이 들어가려는 노력과 배려는 보는 사람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마치 고슴도치들이 자신의 가시에 상대가 다칠까봐 조심조심 접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흔히 섹스를 쾌락의 도구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섹스는 결코 쾌락을 좇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됐고, 사랑이란 굳이 남자와 여자와만이 가능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조차 깨뜨린 것입니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감옥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겁니다. 그건 그냥 섹스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둘에게 아주 절실한 소통을 향한 의식이었습니다.

이제 몰리나와 발렌틴은 하나가 됐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난관이 그들에게 닥쳐 옵니다. 발렌틴은 몰리나에게 게릴라 조직에 비밀 정보를 전해 주기를 부탁하고, 형사들은 몰리나가 발렌틴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알고 몰리나를 발렌틴의 게릴라 조직과 관련한 정보를 끄집어내기 위한 미끼로 풀어줍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몰리나는 발렌틴이 남아 있는 감옥을 향해 눈물 짓는 날을 보내다가 마침내는 발렌틴의 정보를 조직에 넘기는 순간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 감옥에 남은 좌익 운동 게릴라 발렌틴은 고문을 받고 누워서 현실의 고통을 잊는 행복한 꿈을 꿉니다.

몰리나와 발렌틴은 이 소설의 끝 부분에서 두 사람이 제가끔 지향하던 바와 정 반대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몰리나는 발렌틴처럼 죽어가고, 발렌틴은 몰리나처럼 꿈을 꾸고….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보다는 영화, 연극, 뮤지컬로 더 많이 알려졌었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나 연극으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을 겁니다. 이를테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를 연극이나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했을 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의 진짜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 잘 녹아 있어요. 그러나 90년에 나온 이 책 〈거미여인의 키스〉는 우리 독자 대중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 소설의 작가인 마누엘 푸익의 또 다른 작품 〈천사의 음부〉또한 그리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군요. 다시 만나고 싶었던 아름다운 남자 '거미 여인, 몰리나'를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서른 일곱 번째 책에서 다시 불러낸 것은 그래서 참 반가운 일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kkh@joins.com)

▶이 글에 나오는 책들
* 〈거미여인의 키스〉 (이동수 옮김, 가람기획, 1990년)
* 〈거미여인의 키스〉 (송병선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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