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제천문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 고교생 3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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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천문학의 미래를 이끌어가겠습니다.” 이완희·이하선·박범수(왼쪽부터)군이 서울과학고 천문대에서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지난달 22~30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제16회 국제천문올림피아드’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6개, 은메달 2개로 참가학생 8명 모두 메달을 받았다. 21개국 93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실력을 겨룬 대회였다. 그중 이완희·이하선·박범수(이상 서울과학고 1)군을 만나 수상비결을 들어봤다.

세 명의 답이 제각각, 자신감 갖고 불안 떨쳐

 이완희군은 시니어부 개인종합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전체 1등인 셈이다. 올해로 두 번째 참가한 이하선군은 2년 연속 금메달을 받았고, 국제대회에 처음 나간 박범수군도 금메달을 수상했다. 세 학생은 수상 소감에 대해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며 웃었다. 수상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회는 이론·관측·실무로 나눠 3일 동안 진행됐다. 이론시험에는 4문제가 나왔다. 참가자들은 문제를 받고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기존 올림피아드 문제와는 조금 다른 기하학적 형태의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목성과 목성위성이 찍힌 사진과 지구를 기준으로 목성과 태양의 위치를 알려준 뒤 목성위성이 뭔지 알아맞히는 문제였다.

 이론시험이 끝난 뒤 답을 맞혀보는 과정에서 이들은 두 번째 난관을 만났다. 완희군은 ‘유로파’, 하선군은 ‘칼리스토’, 범수군은 ‘이오’로 답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 누가 맞고 틀린지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하지만 걱정만 하고 있으면 다음 시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내가 맞았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갖는 수밖에 없었다.

 하선군은 “이런 게 올림피아드 문제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함정에 빠지게 되는 문제여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완희군은 시험 종료 5분전에 계산실수를 발견했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머릿 속이 하얘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빠짝 차렸죠.”

 다음 날 밤에 진행된 관측시험에서 세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는데 마지막 순서가 된 것이다. 오후 9시부터 오전 2시까지 기다린 이들은 오전 3시가 돼서야 시험을 마쳤다.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머릿속에 쓸데없는 생각도 많고, 긴장되고 초조하기만 했다. 완희군은 “지금까지 노력한 과정을 생각하며 이겨냈다”고 말했다.

최소 2~3년, 최대 5년 꾸준히 준비해야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도 길었다. 1년 넘게 진행된 교육과 선발시험 때문에 때로는 지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이끌어준 힘은 천문에 대한 ‘열정’이었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올해 3월부터는 되도록 많은 시간을 천문학 공부에 쏟았다. 교육은 대학 교수들에게 강의를 듣거나 야외로 나가 관측하는 방식이었다. 참가자들끼리 모여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기출문제를 푼 뒤 서로의 방식을 공유하거나 더 나은 풀이방법을 찾았다. 기출문제에 해답이 없어 참가자 모두 힘을 합해야만 했다. 서로 경쟁자이면서 조력자였던 셈이다. 범수군은 “올림피아드는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다”라며 “최소 2~3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회 준비보다 더 어려운 점은 부담감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특히 완희군은 카자흐스탄에 도착하자마자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때 완희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국가대표로 뽑히지 않은 다른 친구들이었다. “떨어진 친구들의 몫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험 부담은 하선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금메달을 받았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다시 보면 잘 볼 수 있을 텐데…’라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범수군은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각오가 남달랐다. ?첫 국제대회이니 만큼 잘하고 싶었습니다.”
 
꿈에 확신 갖고 안목 넓히는 기회
 
 완희·하선군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후 천문학과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확실하게 했다. 중학교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던 완희군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천문 분야가 적성에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회 전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가 하늘의 별을 보며 공부를 할 만큼 천문학을 좋아한다. 하선군의 머릿속에는 천문 지식이 백과사전처럼 들어있다. 카시오페아와 같은 별자리의 알파성, 베타성, 감마성 등의 밝기를 줄줄 외울 정도다. “별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해요.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거죠. 오염이 안 된 자연 그대로의 세계라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선군은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12년 제17회 국제천문올림피아드’에도 나갈 계획이다. 수상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올림피아드 출전의 장점은 많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국가대표로 실력을 뽐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뿌듯해진다.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실력 있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대회가 끝난 뒤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국제적인 안목을 높이고 시야를 넓히는 기회도 된다. 우수한 외국 학생들을 보며 자극도 받는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부족한 부분을 알아낼 수도 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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