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트롤] '기업 돈 대기' 처방 잘 먹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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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났는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다가서고 있다.

특히 자금시장이 심상치 않다. 요즘 삼성.LG.SK.롯데 등 일부 대기업과 우량 중소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의 자금담당자들은 하루 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기업이 크건 작건, 영업이 잘되건 부진하건 자금시장에서 돈을 구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고 있다.

은행 대출은 엄두도 못내고,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봐야 사주는 금융기관들이 없다.

때문에 주가는 정상회담의 성과가 민망해 보일 정도로 떨어졌고, 시장에서는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돈은 많이 풀렸지만 일부 우량은행에만 몰려 있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은 평양에서 돌아오자마자 10조원대 채권투자 전용펀드 조성, 은행에 단기 신탁상품 허용 등 대책을 발표했다. 골자는 어떻게든 은행돈을 끌어들여 기업에 돈을 대주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6월말까지 부실 실태를 공개해야 하는 은행들의 몸사리기 등 마찰적인 요인들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뢰를 잃고, 불안감에 빠져 있는 시장의 문제를 신상품 허용, 은행 돈 동원 등 대증 요법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회사채 부분보증제 도입 등 정부 대책이 이번 주 자금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들지 않으면 혼란은 크고 길게 이어질 전망이다.

주초부터 표면화할 의약분업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들간의 분쟁 역시 독자들을 정상회담의 흥분에서 현실로 되돌릴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지난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경제협력 분야의 후속 조치들은 이번 주 이후 조금씩 구체화할 전망이다.

당장 엄청난 프로젝트가 터지기는 어렵지만 투자보장협정 등 경협의 인프라를 놓는 작업부터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4주째 접어들고 있는 현대그룹 오너 일가의 진퇴 문제가 이번 주에 어떻게 진전될지도 궁금하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는 이번 주말까지 계열분리와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 방안을 확정할 계획인데, 이를 계기로 정몽구 회장이 경영권 고수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해외에서는 국제유가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인다. 지난주 배럴당 32달러선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다행히 오는 21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장관회의에서 증산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난 주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배럴당 25달러를 넘는 고유가 체제가 9월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들의 원가 압박이 심해지고, 따라서 물가가 들먹거릴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경기둔화 조짐으로 미국 금리의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호재로 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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