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성장, 4%대 물가 … ‘S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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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여건 변화와 한국 경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 총재는 이날 “내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전망치인 170억 달러보다 축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7일 한국은행은 3분기 국내총생산(GDP·속보치)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성장하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다. 시장의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수치다. 2009년 3분기(1%) 이후 최저다. 더 큰 문제는 방향성이다. 전분기보다 0.7% 성장하는 데 그쳐 2분기(전분기 대비 0.9% 성장)보다 둔화됐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경제연구실장은 “저성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당초 전망했던 4%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어렵게 됐다”며 “올해뿐 아니라 당분간 낮은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3.8%로 전망했고, 내년엔 이보다 낮은 3.6%로 보고 있다.

 한은의 전망은 이보다는 낙관적이다. 한은 김영배 경제통계국장도 “지난 7월 전망했던 올 경제성장률(4.3%)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름철 집중호우 등의 영향으로 농림어업과 관광이 상당히 위축되고 유럽발 재정위기가 심화하면서 대외여건이 악화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그러나 “4분기에는 훨씬 개선될 것”이라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 역시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했다. 김 총재는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 강연에서 “내년 성장도 올해 정도일 것”이라며 “흑자 규모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경상 흑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의 수출이 활기를 유지하고 있고, 기업 재고감축 등 이상징후가 나타나지 않는 등 경제 상황이 리먼사태 때처럼 악화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일각에선 경기가 둔화하면서 물가는 뛰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접어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진단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안순권 연구위원은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연 4%대로 고공행진 중”이라며 “성장률이 여기에 미치지 못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이날 함께 발표한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연 4.2%로 7월 이후 4개월째 4%대를 기록 중이다. 반면 당초 연 5%였던 정부의 성장률 전망은 상반기에 4%대 후반, 하반기 4%대 초반으로 계속 낮아졌다.

 ‘4분기부터 좋아진다’는 한은의 전망에도 이견이 제기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신창목 수석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재정위기, 신흥국은 물가상승에 따른 금융긴축으로 저성장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며 “내년 이후에도 경제 회복의 탄력이 약해질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정책당국이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성장률이나 물가에 집착하기보다 경제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에만 의존하는 외바퀴 경제구조를 바꾸고 수출과 내수, 기업과 가계 사이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게 대표적인 과제로 꼽힌다.

안혜리 기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말. 경기가 침체되는데도 물가가 오히려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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