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그리스 50% 헤어컷’ 실제론 18%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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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

결국 그리스 사태는 그리스 국가부채를 40~60% 정도 탕감해주는 ‘질서 있는 디폴트(orderly default)’로 결론 났다. 현재 그리스 국가부채 규모는 지난 7월 21%를 탕감해 3400억 유로인데, 이마저 올해 말께면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하게 돼 추가적 부채탕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헤어컷’이란 단어가 무색하고 거의 ‘삭발’ 수준이라 할 만하다. 사실상의 국가부도다. 그리스를 유로존에 묶어두려는 유로존 정상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대가로, 그리스는 사실상 별다른 희생 없이 우리 돈으로 환산해 300조원이 넘는 부채를 탕감받는 최대의 수혜를 누리게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엄청난 고금리를 물어가며 국가부채를 갚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그러면 이로써 유로존 문제는 해결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이제 겨우 1단계의 첫 번째 단추를 꿰기 시작한 상태라 비유할 수 있다. 먼저 50% 부채탕감을 하더라도 비(非)그리스 민간은행이 보유한 부채 규모인 전체 부채의 39%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 입장에서는 18% 정도의 부채탕감 효과밖에 없다. 아울러 10년 만기 때 받을 원금 및 이자 총액에 대해 50% 탕감하는 것이므로 원금의 탕감 비율은 더욱 줄어든다. 이 때문에 벌써 50% 탕감으론 부족하니 90~100% 탕감해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리스 해법은 이미 시장에 매우 나쁜 신호를 주고 있다. 그리스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은행들의 경우 그리스 부채탕감에 따른 손실 등으로 이미 연초에 비해 주가가 50%정도 폭락했다. 그리스 부채 추가 탕감으로 손실이 더 커지면 추가 주가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탈리아·스페인 국채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면서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의 경우 수익률이 5.95%를 기록하는 등 전고점인 6.20%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보통 국채수익률이 7%를 넘어가면 국가부도 사태로 접어든다고 본다. 이탈리아의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도 454bp(1bp=0.01%)로 오르는 등(우리나라는 151bp수준), 이탈리아 및 스페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등 해당 국가에서도 그리스 예를 따라 긴축재정에 반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기 쉽다. 즉 돈을 대주는 독일은 독일대로 왜 우리 세금으로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느냐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고, 돈을 쓴 나라는 그 나라대로 왜 복지예산을 줄여야 하느냐는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이 내년도 선거에서 신임이 불투명한 점 등 국가별 입장차가 유로존의 신속한 문제해결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기로 한 유로권 정상들의 결정은 앞으로 많은 ‘세부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이러한 세부절차의 진행과정에서 시장은 희망과 실망을 반복해갈 것으로 보인다. 현 상태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문제 국가들이 스스로 재정지출을 감축하는 노력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인데, 이 같은 재정지출 감축 노력은 불가피하게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상되는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인 제로성장에 이어 내년도도 제로성장, 또는 마일드한 마이너스 성장 정도인 경기불황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 결과로 보인다.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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