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에게 필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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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의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토머스 펜필드 잭슨 연방 판사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분할 판결을 내린 후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마치 그 시정조치가 항소심에서 번복될 것을 ‘확신’한다는 듯 싱긋이 웃고 있었다. 회사가 조각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걱정할 게 없다는 듯 태연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을 제기한 정부측의 조엘 클라인 법무차관보도 ‘확신’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이번 시정조치가 번복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며 그것이 올바른 시정조치임을 확신한다.”

둘 중 한 사람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클라인이야 이번 소송이 잘못 돼도 그만이다. 항소법원이 분할명령을 기각하거나(확률 높음) 더 나아가 판결 자체를 뒤엎는다 해도(가능성은 떨어지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님) 클라인에게는 잭슨 판사가 자신의 건의안을 모두 받아들여 MS의 잘못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거리가 된다. 한편 게이츠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만일 게이츠가 패소해 MS의 분할이 집행되면 그 과정의 집안싸움은 가관일 것이다(“음성인식 팀은 우리가 데려갈 거야!”, “인터페이스 전문가 두 명을 넘겨주면 그렇게 하지!”).

게이츠도 직원들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3월과 4월 주가가 1백19달러에서 6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치자 MS 직원들은 크게 동요했다. MS는 이번 소송이 사업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는 않는 변방의 소동에 불과하다는 투의 변명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대신 MS의 앞날이 걸린 차세대 윈도 소프트웨어(NGWS) 계획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사소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태가 지나가는 소나기라며 직원들을 달랜다.

클라인 법무차관보의 구상은 MS를 경쟁적인 두 회사로 분할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운영체제 회사’(OpsCo, 윈도를 물려받는 회사)가 크게 불리해지리라는 것이 MS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처음 매출은 많겠지만 3년 동안 엄격한 규제에 묶여 있어야 한다. MS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는 “시장 경쟁에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분할이 집행된다면 일급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응용체제 회사’(AppsCo)로 몰려갈 것이다. 자금줄인 MS 오피스를 갖고 있으며 인터넷 사업이 가능하고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윈도가 빠지면 구심점 없는 여러 사업체의 집합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응용체제 회사의 앞날도 밝은 것은 아니다.

MS의 미소가 믿음직스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가 몇몇 노인 판사들의 손에서 왔다 갔다 할 동안 태연한 척 모든 것을 거부하는 고집불통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항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도리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있다. 이번 사태는 사실 한 가지 문제에서 기인한다. 화해 협상에 실패한 것도 그것이 최대 장애였을 것이다. MS는 윈도를 어떻게 하든 모두 자신들의 기본 권리라고 여긴다. 그런 입장을 지지하는 듯한 항소법원에 기대를 건다.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한 독점기업이 경쟁업체들을 짓밟기 위해 제품을 개조할 때는 표면상으로는 ‘혁신’이더라도 위법이 될 수 있다고 잭슨 판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원칙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목숨까지 걸 필요가 있을까. 이번 분할 판결로 MS를 파국으로부터 보호해줄 ‘방화벽’은 항소심 판결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 뚫지 못할 방화벽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해커들이 잘 안다. 그러니 이제 원칙은 접어두라. MS는 혁신적 기술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포기할 의향이 있음을 모든 당사자에게 알리고, 경쟁사의 사업계획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신기능을 제한하는 기간에 동의해야 한다. 브라우저를 분리해 별도로 팔면 모양은 사나울지 몰라도 윈도는 여전히 윈도다. 그 경우 NGWS의 개발이 복잡해지겠지만 MS가 분할되면 그 전사적 프로젝트는 필경 사장될 것이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훨씬 나은 셈이다.

MS가 피해를 감수하면서 충분히 양보하면 정부도 그 제의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클라인은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 또 화해가 이뤄지면 정부도 이번 소송에서 질 경우의 부담에서 벗어난다. 게다가 공화당의 조지 W.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소송을 취하할 걱정도 사라진다.

게이츠 씨, 그대의 미소는 항소심 승리를 자신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2년 전에도 역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젠 원칙론은 제쳐두고 협상을 시작하라. 여생의 첫날을 운영체제 회사에서 새 일을 시작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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