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암 투병 최인호, 김훈 초청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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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훈(左), 최인호(右)

금요일이었던 지난 21일 소설가 김훈(63)이 서울 한남동에 있는 선배 작가 최인호(66)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후배 소설가 김연수(41)와 함께였다. 인근 중국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4시간 가량 술과 음식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눴다. 김씨는 와인을 마셨고 현재 암 투병 중인 최씨는 맥주를 한 잔 마셨다고 한다.

 주변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전에는 마주친 일이 별로 없다. 1980년대 중반 김씨가 일간지 문학기자로 필명을 드날리던 시절에도 교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이날 만남은 최씨가 김씨에게 제안해 이뤄졌다. 최근 19세기 천주교 박해사를 소재로 한 장편 『흑산』(사진)을 낸 후배 작가 김씨를 격려하는 자리였다는 것.

 최씨는 김씨에게 “당신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이번에 천주교 관련 글(소설)을 써줘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정약전 형제 중 맏이인 정약현의 큰 딸 명련(命連)과 그의 남편 황사영의 애틋한 사연을 자신도 언젠가 소설로 써보고 싶었는데 김씨가 먼저 써서 반가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황사영은 일찍이 과거에 합격한 엘리트였으나 천주교를 믿게 된 후 로마 교황에게 조선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군대를 파견해달라는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보내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김씨의 이번 소설에 황사영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비중 있게 다뤄져 있다.

 최씨는 80년대 중반 가톨릭에 귀의한 독실한 신자다. 김씨는 지금은 성당을 다니지 않는 냉담자이지만 어려서 세례를 받았고 중·고 시절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노기남 주교의 복사(服事·신부 시중 드는 사람)를 한 적이 있다. 끔찍한 종교탄압이 자행되던 19세기 어두운 한국사를 소재로 한 소설 한 권이 문장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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