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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남북 경협 전망과 과제

중앙일보

입력

남북정상회담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그동안 남북경협이 소규모 위탁가공이나 단순교역 위주로 진행되면서 민간 기업들은 북한의 취약한 인프라와 자유로운 왕래의 제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때문에 경협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사업환경이 개선되면 남북경협이 투자 위주로 바뀌는 등 ‘사업이라고 할 만한 수준’으로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물물교역에서 직접투자로〓업계는 정상회담이 남북경협의 주력을 위탁가공.단순교역에서 직접투자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 한국의 섬유.신발.가방 등 노동집약 산업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배종렬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북한 진출은 교역형(수출입).복합 교역형(임가공).투자형의 순으로 성공 확률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투자형이 어려운 것은 투자보장 등 제도가 미흡하고, 북한내 인프라가 낙후돼 있으며 북한의 낯선 제도.환경에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직접투자는 대우 남포공장, 태창 샘물공장, 현대의 금강산개발, 평화자동차 등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내 인프라 구축이 본격화하면 건설 특수가 일고, 노동집약 산업의 투자 기회도 늘어날 전망이다. 또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중국 등과의 교역에서도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92년부터 북한에서 아크릴섬유를 생산해온 한일합섬의 북한 공장책임자 백의현 부장은 "북한의 임금수준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교육수준이 높고 문화가 같아 중국 등지보다 사업여건이 좋다" 고 말했다.

◇ 인프라 구축 사업에 관심〓기업이 관심을 쏟는 분야는 철도.도로.발전.공단 건설 등 인프라 사업이다.

LG 관계자는 "기존 위탁가공 사업부 외에 종합상사.전기.전자.화학 등 계열사별로 북한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참여를 위한 연구팀을 두고 발주 예상 사업들을 점검하고 있다" 고 말했다. 현대는 8백50여개 중소기업이 입주할 서해안공단 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고, 삼성은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위탁 임가공.전자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수석연구위원은 "투자할 아이템은 많으며 단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즉 ▶단기적(1~3년)으로 건설.철도.관광.가전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과 인프라 사업이 유리하고▶중기(3~7년)에는 중화학 분야로 확대한 뒤▶장기적(7년 이후)으로 자동차.정보통신으로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정부는 제도를 정비하고 육로를 확보해야〓대북사업 관계자들은 ▶자유롭게 현장을 방문할 수 없고▶인프라가 부족해 물류비가 많이 들며▶직접 통신수단이 없고▶투자의 안전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 등을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따라서 ▶최혜국 대우와 조세감면▶수익을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는 시스템▶분쟁발생 때 남북 공동으로 해결하는 기구 구성▶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원 김연철 연구위원은 "정부의 북한.미국간 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노력도 필요하다" 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에 특혜관세를 부여하지 않고 있어 북한 생산품의 경우 미국에 수출할 때 높은 관세를 물어야 하는 점이 우리 기업에 부담이 되리란 것이다.

남북간 물자 수송은 육로가 막혀 있어 해상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물류비가 많이 들어간다. 해상 운송비는 20피트 컨테이너당 9백~1천달러로 중국(3백달러)이나 홍콩(5백달러)보다 훨씬 비싸다.

섬유류 위탁가공의 경우 생산원가의 40%가 물류비다. 평양에서 의류 위탁가공 공장을 가동하는 미들랜드코리아의 강병엽 과장은 "물류비 감축을 위한 육상 수송로 확보가 가장 시급한 문제" 라고 강조했다.

엘칸토 정주권 이사는 "전력난이 심각하다" 며 "최소한 위탁가공 공장이 몰려 있는 평양 주변이라도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고 말했다.

북한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최소 10조원(도로 2조2천억원, 철도 4조9천억원, 전력 2조원 등)이 필요하며, 일본의 산업차관.국제기구의 공적차관 등 재원 조달이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기업은 냉정하고 꾸준해야〓모 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대북사업은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서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홍보용으로 인식돼 왔다" 면서 "본격적인 남북경협을 위해서라도 북한당국은 남한 기업이 돈을 벌도록 해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한의 기술력.자본력과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부존자원을 결합하면 남북한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다" 며 "그러나 북한에 진출할 때는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신변안전 보장.이중과세 방지 등 제도 개선을 전제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고 말했다.

김일성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趙위원은 "북한이 원하는 업종은 컴퓨터.자동차 등 기간산업인 데 비해 남한에서 주로 제시하는 것은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노동집약 산업의 이전 등이어서 상충되는 측면도 있다" 면서 "업종 선택을 잘 해야 북한 특수를 누릴 수 있다" 고 덧붙였다.

조선족 기업인인 최수진 흑룡강성 민족경제개발공사 총경리(사장)는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고 말했다. 일부 중소기업인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와 한두번 만난 뒤 방북 초청장이 오지 않자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한 경제단체장은 98년 방북해 여러 사업을 제안했다가 이렇다할 성과를 못 내자 북한이 기피 인물로 꼽기도 했다.

중소 전자업체의 대북사업을 주도하는 박병찬 전자조합 사업본부장은 "사업 외적으로 북한이 요청한 물품을 별도로 구입해 갖다주는 일도 더러 있다" 며 "체제를 거슬리는 발언을 삼가고 그들과 공생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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