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신에 대한 의심이 인류의 창조성 이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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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의심의 역사
제니퍼 마이클 헥트 지음
김태철 외 옮김, 이마고
725쪽, 2만8000원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파헤친 역사책이 아니다. 뒤집어 본 종교사이자, 과학과 종교의 대립· 화해를 살핀 과학사이며, 철학사로로 읽히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책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지은이가 동서고금의 ‘종교적 의심’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덕분이다.

 그는 ‘신’에 대한 의심이 인류 창조성의 엔진, 문화적 다양성의 원천으로, 모든 지적 발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과학, 비신론적 초월론, 세계주의적 상대주의, 우아한 삶의 철학, 불의에 대한 도덕적 거부, 철학적 회의주의와 신자들의 의심이란 7가지 범주로 나눠 의심의 역사를 훑으면서 종교적 근본주의, 주류의 맹목적인 믿음에서 오는 위험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신학자·과학자·철학자·작가 등 다양한 인물의 생각을 흥미롭게 소개한 점이다. 이를테면 1910년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천국과 지옥, 내세, 인격신 등의 종교이론과 관련해서 그 어떤 과학적 증거도 알지 못 한다. (…) 나는 초월적인 어떤 지성적 존재는 믿지만 신학자들이 말하는 신은 믿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많은 비난이 일어 심지어 그의 투자자들이 제발 믿는다고 말하라고 간청했을 정도였단다.

 지은이는 역사상 ‘의심가’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흔히 쾌락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를 든다. 그는 “신이 악을 막아내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면 신은 무능하다. 능력은 있는데 그럴 의향이 없다면 신은 악하다. 능력도 있고 의향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란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영국 사상가 흄은 지적했다.

 “종교와 신앙이 멋진 것일 수는 있겠지만 유일하게 멋진 것은 아니다”란 저자의 메시지는 매혹적이다. 우주와 인간을 보는 시각을 중심으로 문명사를 이해하는 또 다른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한데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우리 독자들에겐 다소 낯선 인물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꼼꼼한 인물설명이나 친절한 찾아보기 등 편집의 노력이 더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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