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미궁(迷宮)과 미로(迷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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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비(妃) 파시파에가 황소와 관계해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이 괴물을 가두기 위해 왕은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통로를 온통 꼬불꼬불하게 만들어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만들게 했다. 이 라비린토스가 ‘미궁(迷宮)’의 기원이다.

 이처럼 ‘미궁’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곳을 뜻한다. 밖으로 나오는 길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데에서 비유적인 의미가 생겨났다. 바로 사건이나 문제 따위가 얽혀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일러 ‘미궁에 빠졌다’ ‘미궁 속을 헤매다’라고 하는 것이다.

 ‘미궁’과 비슷한 단어로 ‘미로(迷路)’가 있다. ‘미로’는 복잡하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을 의미한다. ‘미궁’과 마찬가지로 ‘미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미로 속을 헤매다’ ‘미로에 빠져 있다’처럼 쓸 수 있다.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태를 얘기할 때는 ‘미궁’과 ‘미로’를 서로 바꿔 쓸 수 있다. 하지만 ‘미로 찾기 퍼즐’을 ‘미궁 찾기 퍼즐’로 할 수는 없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어의 정의(定義)에서 보듯이 ‘미궁’은 미로가 설치돼 있는 ‘곳’이고 ‘미로’는 ‘길’이다. “안내인은 미궁처럼 꼬불꼬불한 복도를 앞장서 가며 우리에게 3층의 다른 객실을 몇 곳 구경시켜 주었다”에서도 ‘미궁’을 ‘미로’로 바꾸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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