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그리스 ‘유로권 퇴장’ 가능성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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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태형
수원대 교수·금융공학대학원

지난달 29일 독일의회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확대하고 이를 융통성 있게 운용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EFSF란 유럽연합(EU)의 중앙은행 격인 ECB가 그리스 사태 같은 금융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설립한 기금이다. 현재로는 ECB가 특정 회원국을 직접 지원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조치로 과연 그리스 사태는 해결 국면으로 들어갈 것인가.

 지난 2010년 말 기준으로 그리스의 부채 규모는 약 4400억 유로, 국내총생산(GDP)의 150% 수준이다. 이번에 증액된 EFSF를 총동원하면 그리스 국가부채를 겨우 막을 수 있다는 단순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을 보면 결과를 종잡기 어렵다. 당시 서브프라임 자체 부실화 규모는 최대 1000억 달러 정도였지만, 서브프라임이 오염시킨 은행권 부실화로 사태가 확산됐다.

 현재 EU에서 그리스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의 경우 총자산은 1조1300억 유로인 반면 시가총액은 120억 유로에 불과해 레버리지 비율이 무려 94배에 달한다. 따라서 50억 유로에 달하는 그리스 국채 투자가 부실화되면 전체 1조1300억 유로의 소시에테 제네랄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다. 이처럼 평균 70배에 달하는 프랑스 및 이탈리아 은행권의 높은 레버리지 비율이 그리스 국채 부실화를 금융불안으로 증폭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자력으로 자국 은행들을 구제하기 힘들다. 정부의 GDP는 2조 유로인데, 은행권의 총자산 규모는 8조 유로에 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사실상 맏형 격인 독일만 바라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은 그동안 EU 통합의 최대 수혜자로 불려왔다. 독일은 EU 통합으로 수출시장이 크게 확대되는 효과를 누렸고, 강세 통화였던 마르크화를 상대적 약세 통화인 유로화로 대체하면서 수출경쟁력이 더욱 강화되는 이중의 효과를 누려왔다. 하지만 EU 출범 당시 조세권 등 재정수단을 통합한 이후에야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경제적 통합이 가능하다는 경제학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게 문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외형적 통합을 서두르면서 결국 막대한 비용의 청구서가 뒤늦게 돌아오기 시작한 셈이다.

 그리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 규모와 관련, 국제결제은행(BIS)은 “최악의 경우 4조 달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시장에서는 일단 은행권의 연쇄 부도를 막고,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감당하려면 최소 2조 유로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4400억 유로 규모인 EFSF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내세워 EFSF 기금 확충이 힘들다면 EFSF 명의의 차입을 일으켜 기금확충 효과를 만들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이 같은 우회적인 기금확충 방안에 대해 ECB와 독일은 사실상의 기금확충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독일은 또한 현재로서는 EFSF의 자국 몫인 2100억 유로가 부담할 상한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독일은 일단 EFSF의 4400억 유로 증액으로 시장의 반응을 살펴본 다음 그래도 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orderly default)’와 유로권에서 자진 퇴장 카드를 내밀 공산이 크다. 한국은 다행히 외환보유액이 여력이 있어 유럽 위기의 여파에 상당기간 버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제금융 시장 불안으로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수출 경쟁 상대인 일본 엔화 가치가 오르면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지므로 그리스 사태로 인한 영향력은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하태형 수원대 교수·금융공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