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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접촉 들켜 죽을 고비 … 자나깨나 권총 지니고 살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8호 06면

‘마약왕’ 조봉행의 검거작전을 이끌었던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일등공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협력자’ K씨를 꼽았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조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K씨를 22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커피숍에서 만났다. 40대 중반으로 가무잡잡한 얼굴에 매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검거 작전 협력자 ‘한국인 K’

-조봉행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2006년 초 친한 친구가 수리남에서 선박용 특수용접봉을 판매하는 사업이 유망하니 같이하자고 권했다. 그 친구는 이미 수리남에 사전 답사까지 다녀온 뒤였다. 워낙 믿는 친구라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뛰어들었다. 사업자금 2억원을 모아 그해 4월에 용접봉을 컨테이너에 싣고 수리남으로 갔다. 당시 친구의 현지 사업파트너가 조봉행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가 수리남을 방문했을 때 조씨가 꾸며놓은 연극에 속아 사업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수리남에 들어간 뒤 수도 파라마리보 외곽에서 조씨 일행과 함께 생활했다. 처음엔 그들이 우리가 현지 교민과 접촉하는 것도 막았다. 친구는 먼저 귀국하고 내가 남아서 용접봉 판매 일을 계속했다.”

-용접봉 사업은 어땠나.
“용접봉은 잘 팔렸다. 그 판매 중개를 조씨가 했다. 그런데 대금을 주질 않았다. 항의했더니 수금이 안 됐다는 등 핑계를 댔다. 시간이 지나 내가 지리와 언어에 조금 익숙해져서 직접 거래처들을 찾아가보니 다들 대금을 조씨에게 줬다고 말하더라. 조씨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챈 것이었다. 게다가 현지 한인교회를 찾아가서 물어보니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 그게 수리남에 간 지 3개월쯤 됐을 때였다.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 보려 했으나 달리 방도가 없어 2007년 11월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하게 됐다.”

-국정원의 협조 요청을 수락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나는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뒤 며칠간 연락이 없어서 ‘안 되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연락이 왔고 국정원과 연결이 됐다. 국정원 측에서 ‘조봉행을 꼭 잡아야겠는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 고심했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1남2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아빠이고 싶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손 털고 나가면 패배자밖에 안 되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치안이 워낙 불안한 수리남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그런지 크게 위험을 느끼지는 않았다. 수리남에선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난 잘 때도 권총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

-조씨와 마약 거래는 어떻게 시작했나.
“내가 시내 카지노나 클럽에서 싸움도 벌이고 말썽을 좀 일으켰다. 거기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방식이었다. 조씨가 그 소식을 몇 차례 들은 것 같더라. 국정원에 협력하기로 한 뒤에는 의도적으로 더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 다른 마약조직에서 조씨에게 날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도 했다더라. 그러던 중 조씨가 나보고 마약밀매를 같이 하자고 제의하며 ‘구매처를 알아볼 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 노는 애들이 있다. 알아볼 데가 있다’고 답했다. 그 뒤 국정원, 미 마약수사기관과 함께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내가 중간에서 마약 거래를 알선하는 척 연극을 시작했다.”

-조씨 부하의 배신으로 죽을 뻔했다던데.
“당시엔 정말 ‘이젠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갑자기 맘이 차분해졌다. 지금 보면 나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내친김에 ‘어차피 이 길밖에는 없다’는 생각으로 조씨를 불러 거꾸로 큰소리를 쳤다. 그게 먹혀 들어가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후회한 적은 없었나.
“국정원에 협조를 약속하고 수리남에 있을 때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면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계속했다.”

-검거 작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상파울루 공항에서 조씨 일행이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다. 내 말을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국정원 요원들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더 기다려보고 정말 안 온다면 내가 수리남으로 다시 들어가서라도 일을 성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씨 부하가 배신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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