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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예산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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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예산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한쪽의 얼굴에서는 8300개가 넘는 사업을 통해 정부 살림살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쪽의 얼굴에서는 국정운영 방향과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정부의 의사결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보통 첫 번째 얼굴을 주로 보지만 사실은 두 번째 얼굴이 더 중요하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예산과 정책의 연계가 여기에 담기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예산의 두 번째 얼굴을 어떻게 그릴까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의 실험이 생각났다. 작은 돌들로 어느 정도 채워져 있는 투명한 그릇에 큰 돌을 넣으려면 이미 작은 돌들로 채워져 있어서 한두 개밖에 못 넣는다. 그러나 방법을 전혀 달리해서 같은 크기의 그릇에 큰 돌들을 먼저 집어넣은 후 작은 돌들을 흔들어 넣으면 다 들어간다. ‘우선순위 정하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실험이다.

 예산 편성은 한정된 재원을 배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선순위 매기기가 특히 중요하다. 내년도 예산안을 준비하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우선순위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재정건전성 문제였다. 두 갈래 길을 놓고 고민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더라도 돈을 더 쓸 것인지, 아니면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할 것인지. 2008년 경제위기 때는 전자가 답이었다. 곳간의 재고가 문제가 아니라 빚을 내서라도 돈을 풀어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려야 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는 후자가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 살림이라는 ‘그릇’의 가장 밑바닥에 깔 ‘큰 돌’은 잠재적 미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재정건전성 확보였다. 이를 통해 2013년 균형재정을 위한 발판을 만들기로 했다.

 두 번째는 여러 개의 큰 돌 중에서 어떤 돌들을 ‘예산’이라는 한정된 용량의 그릇에 담느냐 하는 것이었다. 치열한 고민을 거쳐 세 개의 큰 돌을 골랐다. 바로 일자리 창출, 맞춤형 복지, 경제 활력 제고였다.

 그중에서도 내년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를 뽑는 데는 아무런 주저가 없었다.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인 동시에 성장과 복지가 만나는 접점이다. 일자리를 통해 성장이 이루어지고 복지 수준도 향상된다. 청년 창업, 고졸자 취업, 문화·관광·글로벌 일자리를 만드는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저임금 근로자에게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복지를 통해 일할 여건이 만들어지고 사회통합이 이루어진다. 이런 차원에서 생애단계별·수혜계층별로 차별화된 맞춤형 복지예산이 마련됐다. 또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복지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신성장동력 확충, 녹색기술 투자 등 경제 활력을 높이고 미래 대비 투자를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그저께 발표됐다. 올해처럼 정부의 예산 편성이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던 해는 없었던 것 같다. 무상복지, 대학등록금 인하 등 굵직한 사회 이슈의 초점이 온통 예산으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회가 답을 해야 할 때다. 예산의 두 번째 얼굴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예산이란 ‘투명한 그릇’에 어떤 큰 돌을 담을 것인지. 국회에서의 생산적인 토론과 심의가 기다려진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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