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경선, 한나라당은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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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당이 25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통해 박영선 의원을 뽑았다. 안철수 바람에 흔들려 후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위기에 빠졌던 제1 야당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

 안철수 교수가 시장 출마 가능성을 비친 당시 민주당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은 천정배 의원밖에 없었다. 그는 안철수 바람 이전에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까지 쳤다. 그러다 안철수 바람이 불자 주변에선 천 의원을 ‘너무 일찍 출발해 탈락한’ 우사인 볼트에 비유해 ‘천사인’이라 농담할 정도였다. 안철수의 양보를 받은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 입당을 거부하고, 유력한 대안이었던 한명숙 전 총리마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제1 야당은 사실상 후보를 내지 못하는 불임(不姙) 정당으로 몰락하는 듯했다. 시종 1등 후보였던 박영선 의원도 15일 출마선언에서 “솔직히 마음이 매우 무겁다”로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4명의 후보를 내세워 모양을 갖추었다. 경선방식을 둘러싼 이견을 잠재우고, 두 차례의 합동연설회와 다섯 차례의 TV 토론회를 거치면서 민주당의 존재이유를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민주당만의 성과가 아니라 외풍에 흔들리던 정당정치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다. 물론 민주당 후보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민주당은 박원순 변호사를 포함한 야권후보들과 2차 단일화 경선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만 박 변호사가 이미 ‘민주당에서 제시한 경선 방식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혔기에 2차 경선 역시 한바탕 캠페인성 이벤트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분투(奮鬪)를 한나라당은 배워야 한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안철수 바람에 흔들려 우왕좌왕(右往左往)해 왔다. 당 바깥에서 제2의 박원순을 찾다가 실패하면서 당 내부 후보들이 제대로 나서지도 못했고, 경선의 모양새도 갖추기 어렵게 됐다. 정당의 존재이유는 권력장악이며, 집권을 위해 끼워야 할 첫 단추는 후보를 내놓는 공천이다. 한나라당은 안철수 바람에 놀라기만 했을 뿐 그 경고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