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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얘기하면 북한이 싫어하지 … 그래도 포기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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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6일 미국 뉴저지에서 만난 법륜 스님은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어떻게 현실화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16일 오후 7시(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의 포트 리 고등학교 강당에서 법륜(法輪·58) 스님을 만났다. ‘안철수 바람’ 이후에 법륜 스님과 단독으로 하는 첫 언론 인터뷰였다. 법륜 스님은 5일 시애틀에서 시작해 밴쿠버·샌프란시스코·뉴욕·워싱턴 등에서 순회강연을 하며 미국에 머물고 있다. ‘안철수 바람’ 이후에는 언론 인터뷰를 일절 사양해오던 터였다. 최근 한국 사회를 달궜던 ‘안철수 바람’의 산파 역할을 한 이가 법륜 스님이다. 그는 청춘콘서트를 지원하고 있는 평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법륜 스님은 이날 강연 30분 전에 강당에 들어섰다. 다가가서 물었다.

 -한국에선 ‘안철수 열풍’이 화제다.

 “국내 문제를 외국에 나와서 언급하는 것은 좀 맞지 않다. 워싱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내가 언론 인터뷰를 했던 것과 다른 차원이다.”

 법륜 스님은 말을 아꼈다. 그는 그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북한 주민의 식량난이나 내부 동향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조언을 구할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북한 난민 등을 통한 대북 정보망이 정확하고 두텁다. 법륜 스님은 동시에 북한의 인권과 세습 문제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해왔다. 그렇게 때로는 진보의 목소리, 때로는 보수의 목소리를 냈다.

 -북한 문제에 대해 스님은 포용할 건 포용하고, 비판할 건 비판한다. 중도적인 자세다. 좌와 우를 아우르는 시선은 상당히 불교적인 건가.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다. 친북도 아니고 반북도 아니다. 친미도 아니고 반미도 아니다. 그럼 뭔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좀 더 새롭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 건가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현재는 그런 일들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젠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결집시켜야 하지 않겠나.”

 법륜 스님은 이어 ‘개인’보다 ‘함께’를 강조했다. ‘한 사람의 영웅’보다 ‘여러 사람의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왜 ‘개인’보다 ‘함께’인가.

지난달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박경철씨와 법륜 스님, 안철수 교수(왼쪽부터)가 한 무대에 올랐다. [중앙포토]


 “개개인은 다 장단점이 있다. 우리는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가야 한다. 한 사람의 영웅은 없다. 대중적 지지가 있으면 경험이 부족할 수 있고, 경험이 있으면 대중적 지지가 부족할 수도 있다. 가령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간 편향될 수도 있고, 인격적으로 부드러운 사람이라면 적극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인간은 모두 조금씩 문제가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보완할 수는 없다. 서로 보완하면서 역량을 모아야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

 -안철수 바람의 이유가 뭔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불신과 혐오가 깔린 건가.

 “그런 국민의 열망이 있다고 본다. 여러 지도자를 만났다. 그런데 중도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적극성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 반면 극단적 성향의 사람은 굉장히 적극적이더라. 이건 정파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는 일이다.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강연 시간 직전이었다. 급히 질문을 던졌다.

 “스님께서 개인적으로 보는 ‘안철수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법륜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이날 강당은 약 300명의 미주 한인 청중으로 빼곡했다. 강연에는 형식적인 순서나 권위적인 법문이 없었다. 마이크를 잡은 스님은 “더 가까이서 얘기하자”며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시간이 없으니 바로 문답으로 들어가자”며 청중의 개인적인 삶의 고뇌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을 던지는 ‘즉문즉설’을 이어갔다. 강연은 직설적이면서도 유머가 있었다. 3시간30분 동안 눈물과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강연 도중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을 계속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북한 난민 돕는다니까 한 수도회 수녀님이 ‘스님은 신앙의 힘으로 그걸 하십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실은 신앙하고 별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압록강변에서 죽은 시신을 봤고, 백두산에서 헐벗은 난민을 봤습니다. 나로선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걸 보고 나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내 마음이 더 편하니까요’라고. 나도 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얘기하면 북한 정부가 안 좋아할 거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얘기하면 한국의 우파들이 비난할 거다. 그래도 그걸 한다. 왜? 수행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게 맞기 때문이다.”

 엉뚱한 질문도 나왔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사기라고 들었다. 스님께선 어찌 생각하나.” 법륜 스님은 “내가 사기 칠 일 없으면 뭐 하러 요렇게 머리를 깎고, 요렇게 옷을 입고 다니겠는가”라며 농담을 건넸다. 청중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스님은 이어 “신부니, 목사니, 스님이니 그런 상(相·모양)에 집착하지 마라. 스님이 뭐라더라, 목사님이 뭐라더라. 그런 얘기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중요하다. 그걸 갖고 물음을 던져라.”

 강연 말미에 ‘안철수 교수’에 대한 질문이 청중석에서 다시 나왔다. “스님이 보는 안철수 교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법륜 스님은 싱긋이 웃더니 “안 교수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더 이상 부연설명은 없었다. 이날 강연은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뉴저지=백성호 기자

 
◆법륜 스님=1953년 울산 출생. 69년 불가에 입문했다. 88년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해 수행지도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막사이사이상, 2007년 민족화해상을 받았다. 즉문즉설 시리즈 『날마다 웃는 집』 『기도』 『스님의 주례사』 등을 냈다.

◆즉문즉설(卽問卽說)=즉석에서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불교의 법회 형식.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에서 두루뭉술한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할 때 정확한 물음과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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