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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헤비급’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국내서 유로계 자금 또 빠져나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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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왼쪽)와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시장의 요동을 진정시켜야 한다. 사진은 두 사람이 의회에서 긴축방안에 대한 토론을 듣고 있는 모습. [블룸버그]


그리스 디폴트 위기가 결국 이탈리아를 강등시켰다. S&P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 유럽 재정위기에서 시작된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은 주식·채권·외환시장에 심상찮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강등했다. 한국과 같은 수준이다. 등급 전망도 ‘부정적(Negative)’으로 평가했다. S&P는 “이탈리아의 경제성장 전망이 악화하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

애초 이탈리아의 등급 하향을 경고했던 곳은 무디스였다. 예상 밖으로 S&P가 먼저 치고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S&P에 이어 무디스가 추가로 신용등급 강등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화탁 동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무디스가 이탈리아 등급을 내리더라도 다른 신용평가회사 수준에 맞추는 정도였다”며 “S&P는 등급이 무디스보다 낮은 상황에서 더 낮춘 것이어서 좀 더 나쁜 뉴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20일 국내 금융시장은 장 초반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안정을 찾았다. 코스피는 한때 1800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코스피는 이날 전날보다 약간(0.94%) 오른 1837.97로 장을 마감했다.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11.40원 오른 1148.40원에 마감했다.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장 초반 급등했으나 보합권에 머물렀다.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 때문인지 금융시장도 장 초반 화들짝 놀랐다가 이후엔 어느 정도 진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장 유럽 은행들엔 비상이 걸렸다. 이탈리아 강등 여파로 달러 자금 부족 현상이 심화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업무 시작과 함께 “한 시중은행에 달러 급전 10억 달러를 공급했다”고 발표했다. 깨질 듯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유로 경제에 큰 돌덩이 하나가 떨어진 격이다. 이런 충격은 곧 국내에도 전달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후폭풍은 크게 세 가지다. 국내 금융시장에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원화가치와 채권 값이 떨어지며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홍순표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 경제규모를 합쳐도 이탈리아보다 크지 않다”며 “이미 신용등급이 하향된 프랑스 은행이 신흥국 투자를 줄이고 있는 와중이어서 국내 시장에서도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진균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용등급 하락은 며칠 전부터 나오던 얘기였다”면서도 “유로 경제에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금융시장은 계속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는 일단 안정을 찾았지만 이탈리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이탈리아 위기가 스페인 등으로 확산할 경우 시장에 주는 충격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은행의 채권 부실률은 7월 말 6.94%로 지난 16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정우 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시장의 기대와 유럽 정책 당국이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며 “증시의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충격은 받겠지만 폭락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라서 국내 시장도 주가가 아무리 많이 빠지더라 1700 선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센터장은 그러나 “다만 급락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 많아 지금은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들어갈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안전자산으로서 원화 채권의 지위도 도전을 받을 전망이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하면서 원화가치가 더욱 떨어져 원화 채권 비중을 줄이려는 외국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채권딜러는 “채권금리는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충격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윤여삼 채권애널리스트도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은 환율에 영향을 줘 채권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원화가치가 자꾸 떨어지면 외국인은 주식만 팔고 나가도 이득이 되니 주식과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달러화 같은 안전자산 선호도 두드러질 전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재정위기 우려로 유로화 약세와 달러화 강세 흐름이 지속될 경우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까지는 한국 채권도 안전자산으로 간주돼 외국인이 많이 샀다”며 “그러나 안전자산 선호가 더 심해지면 한국 채권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안전자산 선호 1단계는 주식과 채권 중 채권을 사는 것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며 “현재 세계 자금 흐름이 두 번째 단계로 옮겨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창규·허진 기자

◆국가신용등급(Sovereign Credit Rating)=한 국가의 대외 신인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판단한 등급. 채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등급으로 표시한다. 그 나라의 소득수준, 경제성장률, 대외채무, 외환보유액 등 경제적 요소와 정치체제의 안정성, 국가안보 위험요인 등 정치적 요소가 고려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Moody’s)·피치(Fitch)는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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