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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상방을 넘어서’ 신경상(新京商)

중앙일보

입력

베이징은 정치의 도시다.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은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다. 제조업은 전무했다. 1000여 년 전 요(遼)나라 수도의 하나로 출발한 베이징은 군사도시요 정치도시였다. 청(淸)대 베이징은 대운하를 통해 올라오는 물자에 의지하는 만주귀족과 관료들의 거대한 소비도시에 불과했다. 명(明)과 청대 중국 경제를 주름잡던 10대 상방(商幫, 상인집단) 중에 경상(京商, 베이징 상인)은 없었다. 1978년 말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되면서야 신경상(新京商, 새로운 베이징상인)으로 불리는 일군의 기업가 집단이 탄생했다. “신경상은 기본적으로 유상(儒商∙유교적 소양을 갖춘 상인), 관상(官商∙관료 출신 상인), 기상(技商∙기술적 소양을 갖춘 상인)의 결합체다.”베이징 시정부의 고문역을 맡고 있는 왕치옌(王琪延) 인민대학 교수의 설명이다. 정치와 인재의 도시 베이징이 기업도시로 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 신경상이 있다.

지난 2006년 초‘2006 신경상 서밋(Summit)’이 열렸다. 신경상은 리이닝(勵以寧)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 명예원장이 만든 신조어다. 류촨즈(柳傳志) 롄샹(聯想)그룹 회장,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의 설립자 왕쉬안(王選), 포뮬러 원(F1) 스폰서인‘애국자’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화치(華旗)그룹의 펑쥔(馮軍) 총재, 베이징 우메이그룹(物美集團)의 장원중(張文中), 베이징현대차의 쉬허이(徐和誼) 회장 등은 신경상의 대표 인물들이다. 현재 40여만 명의 신경상들이 활약하고 있다. 2004년 정치협상회의 산하 경제위원회 부주석을 맡았던 리이닝 원장은 당시 전국의 민영경제 현황을 조사했다. 신경상이라는 개념은 당시 조사과정에서 나왔다. 리이닝의‘신경상’을 대화식으로 풀어봤다.

○ 왜 경상이 아닌 신경상인가?
“과거의 휘상(徽商)이 현재 신휘상(新徽商)이 됐다는 논리와 같다. 단, 경상은 과거에는 없던 존재다. 청대 베이징의 상업은 산둥(山東)의 노상(魯商)이나 산시(山西)의 진상(晉商)이 도맡았다. 현재의 신경상이 개혁개방 이후에 등장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신’경상이란 용어가 정확하다.”

○ 신경상의‘신’은 무엇이 새롭다는 말인가?
“세 가지다. 첫째, 새로운 이념이다. 그들은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이념으로 무장하고 등장했다. 그들은 정부에 의지하는 대신 시장경제에 기댔다. 자신들의 분투로 성장했다. 그들은 윈-윈이라는 상호공영의 원리를 체득한 집단이다. 새로운 이념의 의미다.
둘째, 창조 정신이다. 이들은 체제∙기술∙관리∙관념 네 가지 방면의 창신(創新∙개척정신)을 이뤄냈다.

셋째, 새로운 사회집단이다. 민영경제 조사차 광둥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민영기업가가 찾아와 중앙정부에‘집고양이건 들고양이건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흰고양이, 검은고양이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집고양이, 들고양이라는 말은 못 들었다. 왜 자신을 들고양이라고 여기는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기업가 아닌가? 당신들은 과거 자본가들의 후예가 아니라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자다. 신경상 역시 베이징에 존재하던 과거 어떤 집단의 후계자가 아니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건설자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집단의 의미다.”

○ 신경상은 반드시 독자적인 브랜드가 있어야 하나?
“브랜드 없는 기업은 진정한 의미의 신경상이 아니다. 브랜드는 창조하는 것이다. 창조 정신은 기술∙체제∙관리∙관념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영세상인이라고 창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브랜드는 보험이 아니다. 시장 경쟁 속에서 브랜드는 도태될 수 있다. 자기의 브랜드를 계속 유지하려면 부단한 창신과신뢰가 있어야 한다. 변화와 신뢰를 통한 브랜드 관리는 신경상의 필수 조건이다.”

○ 베이징에는 수많은 라오쯔하오(전통상점)들이 있다. 이들도 신경상의 일부인가?
“신경상은 개혁개방 이후 형성된 존재다. 베이징의 수많은 전통상점인 라오쯔하오(老字號)들은 독자 브랜드를 갖췄다. 현대 기업제도와 가족경영제도는 병존할 수 있다. 단, 명확히 구분된 가족들 사이의 재산권, 능력과 투명한 선출 절차를 거친 경영참여, 단련과 검증과정을 통한 후계자 선정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췄다면 라오쯔하오라도 신경상에 포함될 수 있다.”

○ 신경상은 과학기술 기업만 의미하나?
“IT기업만이 신경상은 아니다. 신경상은 전통산업을 포괄한다. 베이징에 R&D센터와 전국적인 최고학부가 밀집해 있다는 이점 때문에 나온 이야기다. 중관춘(中關村)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R&D센터와 우수 대학의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신경상 중 많은 기업들은 앞으로도 고급 신기술에 기반해 발전할 것이다. 전통산업 역시 고급 신기술을 접목시켜 발전해야한다.”

○ 베이징의 엘리트 문화(京派文化)와 신경상의 관계는?
“깊이 있는 베이징 문화는 신경상의 생존 환경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이다. 시안(西安), 산둥(山東), 난징(南京), 항저우(杭州) 등의 문화적 자산도 풍부하지만 베이징만큼의 깊이는 없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베이징의 유학(儒學)적인 전통과 개혁개방 이래 가장 빠르게 도입된 새로운 정치∙경제∙법률∙과학기술∙경영 기술은 신경상만이 갖고 있는 자산이다”

○ 신경상의 본사는 반드시 베이징에 있나?
“베이징에 본사를 둔 기업가와 고향이 베이징이지만 본사는 베이징에 두지 않는 기업가 모두 신경상이다. 본사의 위치는 경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본사가 베이징에 있으면 출신지를 막론하고 신경상이 맞다. 베이징 출신이 외지에서 창업을 해 본사를 그곳에 뒀다고 해도 그는 신경상이다. 외국에 본사를 두었어도 고향이 저장(浙江)이면 절상(浙商)이다. 신경상도 마찬가지다.”

○ 신경상에 상방이란 명칭을 붙이지 않았다.
“방(幫)이나 상방(商幫)에는 작은 이익을 취하고 공격적이고 배외적인 뉘앙스가 포함된다. 시대가 변했다. 과거의 상방과 다른 신경상, 신절상, 신월상(新粤商)이란 용어가 맞다. 신경상은 베이징방(北京幫)이 아니다. 폐쇄적 의미의 상방은 교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신화상(新華商)을 제시했다.
“중국의 기업이 속속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화상(華商)이다. 새로운 이념과 문화, 경영책략을 갖춘 신화상이다. 해외에서 이들을 절상, 월상, 경상으로 나눠봐야 도움이 안 된다. 신화상이라는 명칭이면 충분하다.”

신 경 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이글은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펴내는 '[친디아저널] vol.61 (2011.09)'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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