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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diplomacy] ‘그리운 금강산’을 심은경 가슴에 품고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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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제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후 자주 쓴 한국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연(因緣)’이란 단어입니다. 영어의 ‘커넥션(connection)’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말이죠. 저와 한국의 관계를 바로 ‘인연’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한국명 심은경) 대사는 지난달 중순 한국 언론들과의 이임 인터뷰에서 이별의 아쉬움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외교관이며, 또 인연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다. 이임을 앞둔 지난달 22일에는 서울 정동 대사관저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씨를 초청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들었다. 10년 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부대사로 근무할 당시 조씨의 공연에서 듣고 눈물을 흘렸던 바로 그 곡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젊은 시절 열정을 바쳤던 한국에 대한 옛정이 아련히 되살아나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앞으로도 조씨와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인연은 이뿐 아니다. 1970년대 중반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찾아 심은경(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맺었던 충남 예산중 제자들과의 인연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008년 9월 주한 미 대사로 인천공항에 도착해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심은경입니다. 주한 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입니다”라고 첫인사를 했다. 평화봉사단 활동 외에도 80년대에는 주한 미 대사관 정무팀장(84~87년)과 부산 미 영사관 선임영사(87~89년)를 맡아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금도 예산과 부산을 주저 없이 또 다른 고향으로 꼽는다. 대사 임기를 포함해 그는 한국에서 거주한 기간은 모두 10년 정도다. 그가 종종 인용하는 속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처럼 한국 생활 10년은 그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스는 이전 대사들과는 달리 한국인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부임하자마자 개인 블로그인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cafe.daum.net/usembassy)를 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단상 등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그는 한글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이지만 매일 아침 30분씩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블로그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기에 나 또한 똑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신이 처음 배운 한국말은 “물 주세요”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75년 7월 서울에 도착했을 때 무더위로 인해 거의 탈수상태에 빠졌을 때 배웠던 ‘생존 한국어’라고 한다.

 한국인의 좋은 이웃이자 친구로 자처했던 그의 대사로서의 성적표는 어떨까. 스티븐스는 부임 직후 “한·미 관계는 21세기에 맞는 전략적 동맹관계”라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과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한반도 비핵화, 영구적 평화 구축,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이라고 꼽았다.

 이 중 FTA는 우여곡절 끝에 미 의회 비준만을 남겨둔 상태다.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은 이미 그의 임기 중 시행됐다. 그가 남긴 과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영구적 평화 구축이다. 그는 이와 관련,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후임자가 전임자의 일을 바탕으로 뭔가를 해나가듯이 남겨둔 일을 후임자에게 맡기고 기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북아일랜드 휴전협정 관련 업무를 5년간 했다. 온갖 노력 끝에 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벨파스트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곧바로 휴전이 성사되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 합의된 내용이 시행된 것은 2008년이었다. 한반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티븐스 대사보다는 심은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로 인해 그는 한국을 가장 잘 이해했던 주한 미 대사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그이기에 마지막까지 인연을 강조했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지만 한국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인사말이다.

최익재 기자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

1975~77년: 평화봉사단 단원
80~82년: 중국 광저우 영사관 영사
84~87년: 주한 미 대사관 정무팀장
87~89년: 부산 미 영사관 선임 영사
90~2007년: 유고슬라비아, 북아일랜드, 포르투갈, 미 국무부 등에서 근무
2007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선임 고문
2008년~: 주한 미 대사

요일별 섹션 순서를 조정합니다. 월요일엔 law&diplomacy를 신설합니다. 법조계와 외교가 안팎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일부 바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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