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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과 ‘e-편한세상’, 어느 게 더 효과적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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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22면

신정아씨의 자서전 4001 출판 시기에 맞춰 언론은 4001에 등장하는 가십거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은밀한 사생활 이야기가 특히 부각되었다. 전 정권과 현 정권 관련 명망가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당사자들은 펄쩍 뛰고 사실을 부정했지만, 저자는 ‘1%의 거짓말도 없다’고 주장했다.

최종학의 경영산책

사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언론 플레이는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런 마케팅 방법을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좋거나 나쁜 이미지와 관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켜 소문을 내는 기법을 말한다. 일반인들은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필자가 만나 본 마케팅 전공 교수들은 펄쩍 뛴다. 마케팅이 아니라 책만 팔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고 표현하는 분도 있었다.

노이즈 마케팅은 정치인들의 회고록이 발간될 때 종종 사용된다. 최근 문재인씨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 발간 때 일부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논란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신인 배우가 데뷔할 때 이상한 소동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는 상당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제품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때문에 홍보 캠페인이 끝난 이후에도 효과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품질이 잘 구별되지 않는 제품일수록 효과가 클 것이다. 소비자들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왜 그 브랜드를 기억하게 되었는지의 이유는 잊어버리고 브랜드 이름만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품의 품질이 확실히 구별되면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소비자들이 호기심에 한번 제품을 써볼 수는 있어도, 품질이 만족할 수준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해당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001을 자신 있게 주변에 읽으라고 권하거나 자녀들이 읽도록 집의 서가에 남겨둘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결국 중요한 것은 제품의 품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림산업은 ‘e-편한세상’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알리면서 노이즈 마케팅과는 다른 접근방법을 선택했다. 유명 배우가 모델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광고 카피에서는 ‘진심이 짓는다’며, 소비자를 위해 대림이 개발한 아기자기한 편의시설을 소개할 뿐이다. 좌우 10㎝ 정도 더 넓은 주차공간, 편리한 수납장, 단지 내 위치한 어린이집,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설계, 벽 속에 숨은 수납장 등 사소한 것들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리고 ‘든든한 진심’ 이라며 끝을 맺는다.

좁은 아파트 주차공간에 가득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문을 간신히 열어 차에 탄 후 아슬아슬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좌우 불과 10㎝ 정도 더 넓은 주차공간이라는 사소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동감할 것이다. 그 덕택에 대림산업은 최근 각종 광고대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가장 살기 좋은 아파트’로 뽑히는 영예를 얻었다. 광고만 잘했다면 살기 좋은 아파트로 뽑힐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광고 내용과 실제 아파트의 품질이 다르다는 불만만 더 크게 생길 것이다. 결국 아파트를 사용해 본 소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제품의 품질이 전해졌기 때문에 이런 결실이 생긴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진정성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소동을 불러일으켜 관심을 끄는 노이즈 마케팅 가운데 어느 방법이 더 효과적인지는 명백하다. 노이즈 마케팅이 단기적인 효과는 더 크겠지만 결국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겉포장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 경영에서 진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가 진정으로 직원과 회사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직원들이 리더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따르는 체’ 할 뿐이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 기업의 성과에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직원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알아서 회사의 업무를 수행해 나가려면 결국 그런 마음을 직원들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리더의 진정성이 직원의 진정성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기업의 공시도 마찬가지다. 장밋빛 전망과 홍보로 가득 찬 공시만 계속 발표한다면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려 신주나 사채를 발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공시 내용을 실적으로 추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해 발생한다면 투자자들은 더 이상 해당 기업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단기적인 주가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솔직히 문제점을 털어놓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더 신뢰받을 수 있다. 여러 학술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부정적인 뉴스를 즉각적으로 잘 알리는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높다. 그에 반해 긍정적인 뉴스를 잘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는 큰 반응이 없다. 워낙 긍정적인 뉴스는 홍보하고 부정적인 뉴스를 숨기는 경우가 많으니 투자자들도 긍정적인 뉴스를 한 번 더 듣는다고 해서 크게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뉴스는 숨기고 시장에 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차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알려지게 된다. 결국 뉴스가 주가에 반영되는 것은 이번 분기냐 다음 분기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프다’라는 말처럼 솔직하게 부정적인 뉴스를 알리는 편이 더 효과적인 것이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잘못을 했다면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거짓말을 계속하는 사람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따돌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도 다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한두 번은 속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사람됨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한 개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판이나 인상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업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도 결국 이런 자녀 교육이나 사람 관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진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경우만 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영 대가인 서울대 윤석철 명예교수는 ‘네이키드 스트랭스(naked strength)’라는 말로 이런 내용을 표현한다. 명예나 직책, 회사 이름 등 화려한 겉치장을 다 벗어버리고 남 앞에 알몸으로 섰을 때 진정 가치가 있는 사람 또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든든한 진심’을 가지고 살아보자. 소비자가 기업을 보는 눈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최종학(44)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와 석사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회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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