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인타운 노인들의 하루

LA한인타운 내 한 센터에서 한인 노인들이 댄스를 추고 있다. 노인의 일과에서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 시간은 필수다.［중앙포토]

강산이 일곱번 바뀌고 삶이 노련해졌다. 어느덧 황혼이다. 예전같지 않지만 아직 마음이 젊다. 할머니 대신 아주머니라고 불러주는 사람들 때문에 여전히 아침에 단장하는 시간이 즐겁다. 일이 없어지고 만날 사람이 한정된 일상은 지루한 듯 하다.

과연 노년에도 행복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일 없고 배우자가 없고 죽마고우가 없다 해도 행복은 빼끔히 고개를 내민다. “할버지 사랑해요” 손자 녀석 전화 한 통에 마음이 터질 것 같이 행복한 것이 바로 노후의 삶이다. 65세 은퇴 후 삶은 멀리 있는 줄 알았다. 지금 바라보는 부모의 삶, 그 자리에 생각보다 빨리 서 있다.

"부모님의 하루 일과를 아세요?"

100세 장수시대가 부각되며 노인관련 복지정책과 문제 및 해결방안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득 LA한인들이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하루 일과를 알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LA한인타운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한인 노인들 중 무작위로 다섯 분의 하루일과를 쫓았다.

70대~80대 다섯 분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보니 남는 시간이 많았다. 또한 그 안에 일정 패턴도 있었다.

만날 사람이 적고 활동 반경이 작은 노인들에게도 삶의 시간표는 존재했다. 거기에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 시간은 필수였다. 낮잠을 주무시는 부모님에게 몇 시에 전화해야 할지 등 섬세한 배려 등도 알 수 있었다.

하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8시간은 특별한 활동 없는 70~80대 부모님들의 하루 일과를 보며 자식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오전 3시간 오후 5시간 잉여

김인환 할머니는 83세 연령대에 외출이 잦은 편이다. 하지만 TV 시청 시간만 7시간이 넘었다.

"TV는 그냥 틀어놔. 시간도 빨리 가."

장래환 할아버지는 오후 12시 점심까지 집에 머문다. 일어나서 산책과 식사시간을 빼고는 별다른 일이 없다.

"노인 센터에 나갔지만 예산 부족으로 감원되어 이젠 갈 수 없어. 영어교실도 문을 닫았지. 물개로 불릴 만큼 잘하던 수영도 그만둔 지 오래야." 갈 곳이 없어진 요즘 오전 시간에 할 일이 더욱 줄어들었다.

최춘열 할아버지는 팜 데일에 거주. 인근에서는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오전 오후 집에서 스무 그루 나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운동도 되고 나이들 수록 자연 속에 있는 시간이 편안해."

▶건강 위해 퍼즐.산책 필수

86세 장래환 할아버지는 하루 세 번 산책. 식사 전 산책한다. "먹는 횟수 만큼 움직여. 노년기부터 시작한 생활 습관이야."

박원희 할아버지에게 산책은 영양제다. 차 없이 걸어 8가~6가를 종횡무진 걷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만보 걷기가 생활이 됐다.

김인화 할머니. "마켓 옆에 살아서 필요한 것 그 때 그 때 사러 다녀. 거기서 동무들 만나면 수다 떨고. 그게 운동이고 재미지." "엄마 혼자 집에 있으면 치매와요." 딸들 성화에 퍼즐 한 판하고 TV보고 열심히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다.

다섯 분의 노인 중 가장 젊은 장한숙 할머니 운동은 다채롭다. 아침식사 전 배드민턴 오후는 라인 댄스 주변에 이렇게 사는 노인은 100여 명이다.

▶안부 전화는 오후 4시에

노인 다섯 분은 낮잠을 잔 후 혹은 외출 후 집에 온 시간은 평균 오후 4시.

김인화 할머니는 "어제는 노치원(노인들이 부르는 양로보건센터 애칭) 갔지. 동무들과 자리 싸움하고 수다 떨고. 노치원 갔다오면 2시간은 낮잠 자야돼. 유치원 아이들 시간표와 같다니까."

젊을 때는 박카스 주스 비타민으로 피로가 반짝 풀렸다. 하지만 노년에는 잠이 보약이다. 김할머니는 "피곤하면 한 두 시간 자고 나면 피로가 싹 풀며. 이런 보약같은 잠을 자는데 전화 오면 오후 내내 피곤해." 마켓 및 옆집 방문 등 가끔 일보는 오전보다는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낮잠을 잔 후 지루한 오후 4시쯤 통화가 반갑다.

"저희는 별일없이 잘 지내요" 전화 건너 들려오는 이 말이 제일 반갑다.

이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