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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서 전쟁 때만 만났던 세 나라, 이젠 평화 위해 모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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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이끄는 신봉길 초대사무총장(가운데)과 중국에서 부임해 온 마오닝 사무차장(왼쪽), 일본에서 온 마쓰가와 루이 사무차장(오른쪽). 창 밖으로 서울 도심의 모습과 함께 구한말 한반도 이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 간 각축전의 무대가 됐던 덕수궁이 내려다 보인다. 최정동 기자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에 이달 초 새로운 국제기구 하나가 입주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각종 정부 간 협력 사업을 총괄 관장하는 ‘3국협력사무국’이다. 국제기구라고 해 봤자 직원 20명의 단출한 규모지만 이 기구가 지향하는 미래의 꿈은 원대하다. 한·중·일 3국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추구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EU)이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 버금가는 지역 통합까지 시야에 두는 것이다. 신생 기구를 이끌 초대 사무총장에는 3국 합의에 따라 신봉길 전 요르단 대사가 선임됐다. 8일 찾아간 그의 사무실엔 한·중·일 협력과 통합의 원대한 꿈을 상징하듯 꿈 ‘夢(몽)’자 대형 휘호가 걸려 있었다.

-사무국의 역할을 설명해 달라.
“3국 정상의 합의에 따라 체결된 설립협정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우선 3국 정부 간 협력을 총괄 조율하는 기능이다. 이미 세 나라 사이에는 2008년부터 연례화된 정상회담을 비롯해 장관급에서 실무자급에 이르기까지 50여 가지 정부 간 협의체가 있다. 지금은 이들 협의체가 개별적,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앞으로 사무국이 체계화, 조직화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중·일 정상회담 등에서 합의한 것들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3국 대학들 간의 교환학생 파견, 공동학위 수여 등 교류사업을 하는 ‘캠퍼스 아시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100여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

-이 기구가 베이징이나 도쿄가 아닌 서울에 세워진 의미는.
“나는 사무국이 한국에 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지리적으로 우리가 중간에 있고 역사적 라이벌 관계를 따져 봐도 그렇다. 표면적으로는 2009년 정상회담 때 우리가 유치를 신청해 중국과 일본이 찬성한 결과다. 만약 중국이나 일본 가운데 어느 한쪽이 유치를 희망했으면 나머지 한쪽의 견제로 쉽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3국 협력이 활성화될지의 관건은 한국이 조정·중재 역할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있다. 사무국이 서울에 위치한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위상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과거엔 맞았을지 모르지만 이젠 우리가 돌고래 정도는 될 만큼 커졌다.”

-3국 간에는 역사적 갈등이 뿌리 깊고 국민 감정이 남아 있는데 협력이 잘 될까.
“역사상으로 한·중·일 관계가 좋았던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세 나라가 처음 조우한 것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고 이를 구하러 일본군이 한반도에 왔을 때다. 둘째 조우는 임진왜란, 그 다음이 청일전쟁이다. 세 차례 모두 평화가 아닌 전쟁이었고 그 공간이 한반도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역사를 간직한 세 나라가 처음으로 이렇게 협력을 위한 상설기구까지 만든 건 대단히 상징적 일인 동시에 실질적 의미도 있다.

우리 사무실에서 덕수궁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며칠 전 중국과 일본에서 부임해 온 사무차장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100여 년 전 구한말 바로 저곳에 고종이 계셨는데 하루는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와 협박하며 이권을 내놓으라고 하고, 다음날에는 일본 공사가 와 항의하고 이권을 챙겨가곤 했다. 바로 저 궁궐이 그런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랬더니 두 사람 모두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협력해 나가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 아니냐’고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 나는 한국인이 아닌 동북아인으로 일할 테니 여러분도 그런 자세로 일해 달라’고 했다.”

-한·중·일이 협력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한·중·일 협력이 필요한 첫째 이유는 평화다. 평화라고 하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사실 이 지역은 독도, 댜오위다오 등 영토 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고 북한 문제도 얽혀 있어 안정적 지역이라고 하기 힘들다. 둘째 목적은 공동번영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역량을 갖고 있고, 한국도 분야에 따라 일본 못지않은 역량이 있다. 중국은 막강한 잠재력과 세계 최대의 시장을 갖추고 있다. 이미 한·중·일 세 나라의 경제 규모는 27개국으로 구성된 EU에 버금갈 정도로 크다. 그러니 세 나라가 협력을 잘하면 공동의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과도 대등하게 협의할 수 있다.
‘한·중·일+미국’ ‘한·중·일+러시아’와 같은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중·일이 주축이 되어 이런 문제들을 논의하려고 하니 관심 있으면 이리 와서 회담하자’고 하면 달려올 나라들이 상당히 많다고 본다.”

-너무 낙관적 전망 아닌가.
“EU 사무국이 지금은 3200명의 직원을 갖춘 조직이지만 처음엔 직원 28명으로 시작했다. 우린 20명으로 출범한다. EU의 모태는 석탄철강공동체(ECSC)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에 필요한 두 가지 물자, 즉 석탄과 철강만 공동 관리하면 앞으로 전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하고 적대감이 뿌리 깊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화합했다. 거기에 비하면 한·중·일은 훨씬 나은 상황이다.

물론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중·일이 서로 매일 싸우기만 하지 과연 단합하겠느냐는 비관론이다. 그런데 이미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을 내세웠다. 세 나라가 각자 군대를 갖고 서로 싸울게 아니라 공동의 군대를 창설하고 공통 화폐를 만들자는 내용이 거기 들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선각자이고 지성인이었다.”

-한·중·일 협력의 장애물은 무엇일까.
“내셔널리즘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중국의 내셔널리즘은 자신감을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여태까지 경제발전에 주력하느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나라 역량이 갖춰지니 대외적으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자신감이 분출되고 있다. 일본은 최근 들어 국내 상황이 썩 좋지 않은데 이런저런 불만들이 바깥을 향해 표출될 수 있다. 한국은 최근 국력 신장에 따른 자신감도 있고, 국내적 불만도 있고, 두 가지 경우가 혼재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보는데 이번에 사무국 직원을 채용하면서 이를 다시 한번 느꼈다. 젊은 세대 중에는 내셔널리즘에 얽매이지 않
고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유능한 인재들이 많다. 가령 한 한국인 직원은 어릴 때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미국에서, 대학원은 베이징대를 다녀 한·중·일 3개 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이제 사무국이 세워졌으니 당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려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려 한다. 3국 FTA는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그동안 산관학 합동 연구를 해 왔다. 원래는 내년 말까지 연구한 뒤 보고서를 내게 돼 있었는데 지난 5월 도쿄 정상회담에서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앞당겨 올 연말까지 끝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몇 차례 회의를 더 한 뒤 연말에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내년부터 당장 협상에 착수하자는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 물론 한·일 또는 한·중 양자 FTA를 먼저 한 뒤 3자로 확대해 나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 간에는 농업문제나 산업발전 정도 등에서 격차가 크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딱 중간에 있다. 그래서 FTA를 추진하는 데도 우리 역할이 크다고 본다. 우리 정부
는 양자든 3자든 협상을 시작하는 건 언제든 좋다는 입장이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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