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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없이 규제만 하려면 송도 경제특구 차라리 없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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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정치인’의 선두 주자인 송영길(48·사진) 인천시장이 ‘우(右)클릭’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송도 신도시(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투자병원(영리법인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숭의운동장에 대형마트 입점을 기정사실화하면서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귀족병원’으로 인식되는 투자병원이 설립될 경우 지금의 건강보험 시스템이 붕괴되는 등 공공 의료 제도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송 시장이 속한 민주당은 영리병원에 반대해 국회 통과를 막는다는 게 당론이다. 송 시장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송도 영리병원은 도입 시기가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영리병원뿐만 아니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재재협상’이란 민주당 당론과 달리 찬성 입장이 분명하다. 그는 “FTA 문제는 호불호나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구조상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인천은 GM대우 등 대규모 자동차 공장 밀집 지역이고 그의 정치적 배경이란 점을 고려하면 과감한 우향우다.

그런 그가 인천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였다. 1일부터 사흘간 중국 톈진(天津)시 경제자유특구인 빈하이 신구(濱海新區)를 다녀와서 정부의 집중 지원을 강하게 거론하고 나섰다. 간섭하고 규제만 하는 경제자유구역이라면 차라리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송 시장이 둘러본 빈하이 신구는 어땠을까. 인천 자유경제구역의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8일 인천시청 시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빈하이 신구 인프라 비용은 전액 정부 몫
-빈하이 신구와 송도 국제도시는 비슷한 개념과 목적으로 출발했다. 빈하이 신구를 둘러보니 어땠나.
“중국은 중앙정부가 달라붙어 만든 것이고 우리는 지방정부에 맡긴 채 쳐다만 보는 차이가 있다.
2006년부터 조성된 빈하이 신구는 5년 새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152개 업체를 포함해 4864개 외국기업을 유치했다. 막상 둘러보니 멀리 앞서가고 경쟁력이 막강했다. 송도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부의 집중 지원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예컨대 외국 투자를 끌어오려면 인프라가 깔려야 하는데 중국은 인프라 비용을 모두 중앙정부가 댔다. 20만t 이상 배를 대기 위해 항구를 19.5m 수심으로 모두 팠다. 환상적이더라. 항구 배후엔 골프장과 물류 보세지역을 만들었다. 화물 컨테이너와 크루즈, 요트를 한꺼번에 같은 항구에서 소화하는데 너무 부럽더라.”

-송도는 그렇지 않나.
“당장 인천엔 크루즈항(국제여객터미널)조차 없다.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올해 인천항엔 32대나 되는 크루즈가 들어온다. 그런데 화물 부두에 배를 대고 내린다. 크루즈 관람객이 얼마나 황당하겠나. 크루즈 한 대 들어오면 2000명이 내린다. 그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릴 항만과 쇼핑 시설 투자가 시급한데 크루즈항 건설에 5000억원이 들어간다. 중앙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화물 부두에 내린 크루즈 관람객들에게 신포시장 닭강정을 권하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지 않겠나.”

-인천 경제자유구역은 빈하이 신구보다 3년 앞서 시작됐다. 왜 차이가 커졌나.
“일단 중국엔 엄청난 규모의 내수 시장이 있다. 싼 임금만 따먹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예컨대 인천에 있던 영창악기도 거기로 갔다. 연 2만 대를 생산하는데 1만2000대를 중국에 팔고 있다. 중국이 전 세계 피아노 수요량의 70%를 소화한다. 세계 100대 피아노 제작사가 모두 빈하이 신구에 있다고 한다. 중국 내수 외에도 중국 중앙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엄청나다. 법인세는 말할 것도 없고 투자 유치에 정부가 직접 발 벗고 나선다. 유치 비용을 중앙정부가 분담하고 담당 공무원에겐 인센티브를 준다. 우리 STX는 중국에서 100만 평이 넘는 땅을 거의 공짜로 받았다. 2000명 이상을 고용했다더라.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만 했지 무슨 지원을 하고 있나. 송도는 우리가 땅 팔아서 돈 만들어 쓴다. 그래서 투자 유치를 위한 무슨 레버리지가 나오겠나.”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
“투자 유치에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예컨대 카지노 산업이나 레저 산업이 당장 들어와야 하는데 여러 가지 규제로 안 되고 있다. 5억원 이상 부동산 투자 이민 제도란 게 있다. 강원·제주·여수 엑스포만 허용되고 인천이 빠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인천국제공항 여행객이 3300만 명인데 단순 통과 여객이 500만 명에 달한다. 마침 영종도가 섬이니 영종도를 비자 프리 지역으로 만들어 그 사람들이 하루 쉬면서 골프나 카지노를 하게 하면 좋지 않겠나. 이런 것들이 규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에 규제만 있지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일어나지 못하면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좋겠다. 뭔가 특별하자고 만든 것인데 특별한 것은 없고 규제 천지다. 이것저것 간섭하고 못하게 하는 것 투성이다. 그러면서 경제자유구역은 6개나 만들고 이젠 더 늘린다고 한다.”

과천 갈 때마다 ‘나는 乙’ 세 번 복창
-중앙정부에 요청해서 풀면 되지 않나.
“과천에 갈 때마다 ‘나는 국회의원이 아니다’를 마음속으로 세 번 복창하고 간다. 절절하게 매달리지만 사무관 한 사람이 쥐고 있으면 두 달이고 석 달이고 해결되는 문제가 없다. 예를 들면 인천 지하철 2호선 문제가 있다. 당초 완공 계획은 2018년이다. 아시안 게임 때문에 2014년까지 조기 완공하려고 하는데 건설 비용이 2조1000억원이다. 국고와 지방 비율이 6대 4고, 6000억원을 선투입해야 한다. 국고지원액 3600억원을 빨리 지원해 주거나 부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우리 요청인데 1년이 넘도록 해결이 안 된다.”

-왜 그런가. 민주당 시장이어서 그런가.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한나라당인 김문수 경기지사도 같은 얘기를 한다. 우리 국가 시스템의 문제고 관료 문제다. 미루고 핑계 대기에 바쁘다. 빈하이 신구와 경쟁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균형론과 분산론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안 된다. 인천은 수도권 정비계획법으로 발을 묶고, 경제자유구역은 6군데나 만들었지만 투자 유치가 안 돼 국내 도시끼리 싸우고 있다.”

-인천시가 직접 투자하면 되지 않나.
“인천시 부채가 10조원에 달한다. 시 자체의 부채는 3조원인데 지하철 건설과 아시안게임 준비 때문이다. 나머지는 도시개발공사가 검단 신도시·영종 하늘도시 등의 토지 보상에 돈을 뿌렸다. 하루에도 이자가 몇억원씩 들어가지만 사업을 그만둘 수도 없어서 도시개발공사가 돈을 추가로 자꾸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신도시에 투자할 여력이란 게 아주 조금이다.”

-왜 그렇게 됐나.
“전임 시장 설거지로 고생이다. 예컨대 2009년에 인천시 도시축전이란 게 있었다. 송도를 알리겠다는 게 목적이었는데 당시엔 송도 신도시가 25% 개발된 상태였다. 도시 축전 일환으로 월미 은하레일이란 걸 만들었는데 853억원이 들어갔다. 경제성도 없고 안정성도 없어 법적 분쟁이 있다. 리모델링을 검토 중인데 철거하면 철거비만 200억원이다. 엄청난 재정 낭비가 있었다. 내가 시장돼서 추가로 사업을 벌일 수 없을 지경이다.”

-해결책이 뭔가.
“아껴 쓰고, 빌려 쓰고, 빌려 오자는 게 3대 모토다. 일단 긴축으로 전년 대비 5000억원 이상을 삭감했다. 아시안 게임 주경기장 규모를 1000억원 이상 줄이고, 건설비용은 2조5000억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6000억원 이상 줄였다. 국고지원이나 국가 프로젝트 사업을 유치하고 수익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교통 공사와 메트로, 도시개발공사와 관광공사를 통합시키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공사와 공사 간 통합은 처음인데 인건비와 사업비 2000억원 절감 효과가 있다.”

대원군 때 쇄국정책 할 건가
-송도 신도시의 모멘텀은 뭐가 있을까.
“한·미 FTA가 해답이다. 우리가 중국처럼은 아니지만 시장을 넓히는 길이다. FTA가 빨리 돼야 규모의 경제가 나오고 기업 유치가 쉬워진다. 또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떠나는 일본 기업을 유치하려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뛰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풀려 6자회담 등이 재개되면 개최지를 인천으로 유치해 남북관계 특수를 잡아보려는 생각도 한다.”

-국제도시가 성공하려면 병원과 교육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송 시장은 선거공약으로 송도영리병원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하지 않았나.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조율된 정책 공약이다. 의료 민영화엔 반대한다. 하지만 투자개방형 병원은 송도에 한정해 만들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는 송도에 영리병원을 만들면 영리병원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존스홉킨스 병원 측에 왜 송도 병원에 관심을 갖는지 물어봤다. 답이 재미있다. 더 지방으로 가면 의료진이 싫어한다고 한다. 장기 이식을 위한 중국과의 거리를 고려해도 송도가 적당하다고 말하더라. 휴스턴 암센터엔 비행기 타고 가면 되고 송도 병원은 안 된다는 논리가 뭔가. 그것도 싫다면 대원군 때처럼 쇄국하고 살자는 얘기인가.”

-진보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송 시장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사람이든 공약대로만 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무엇이든 하려면 돈이 든다. 그런데 인천시는 지금 부도 직전 상황이고 부도를 막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월미 은하레일 사업으로 853억원 까먹은 사람을 교체했다. 허정무·금난새씨는 삼고초려해서 모셔왔다. 그랬더니 허정무 감독이 호남 출신이라며 학연·지연으로 사람 쓴다고 비난한다. 이명박 정권 인사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도 안 되는 인사다. 나를 지지한 시민단체의 인사 문제 지적은 실제보다 과장돼 있다.”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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