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근혜 非지지층이 경쟁자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관련사진

photo

박 전 대표 반대층과 중도층에게 대안으로 인식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이사장.


월간중앙
“황 교수, 어떻게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야당 대표보다 더 많은 지지율을 보일 수가 있어? 그 사람이 누군지 대중이 알기는 해요? 내가 그 여론조사 기관이 형편없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이런 조작된 결과를 발표할 수 있죠? 필시 이상한 세력이 국민여론을 조작하는 거죠?”

대중심리로 본 ‘박근혜 필패론’

정치권에 관심이 많은 어느 지인으로부터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그에게 내년 대선구도와 대중심리를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평소엔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서 흥미로웠다.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대세를 추종하던 사람이었고 대세에 거슬리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불편했다는 얘기다.

대세는 소비행동이나 마케팅에서 나타나는 군중심리와 유사하다. 보통 트렌드 또는 유행이라고 표현하며,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도 불린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 대세와 부합하는 자신의 심리 코드는 쉽게 드러내고, 대세와 어긋나면 가능한 한 숨기려 한다. 한국인에게 ‘대세’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생존 문제에 직결된다. 복잡하고 불안한 시기에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세론은 그가 현직인 이명박 대통령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미래권력’으로 대중의 마음속에 각인돼 있음을 알려준다. 대세를 찾고 따르려는 대중의 마음속에 뚜렷하게 부각된 하나의 선택지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속에 특정 인물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때, 이 인물과 대비되는 다양한 선택지도 동시에 생겨난다. 다만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대세론이 대중의 마음속에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박근혜 대세론의 실체가 드러난다.

대세와 어긋나면 숨기려는 한국인의 심리
우리나라 정치인은 국민에게 존경과 인기를 얻는 직업이라기보다는 불신과 미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런 상식에 예외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릴 뿐만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가 무엇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질까? 필자는 2005년, 2007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대중이 보는 박 전 대표의 이미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표는 대통령과 대비될 정도로 뚜렷한 대중적 이미지를 지녔다고 확인됐다. 2005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뚜렷하게 대비되었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로도 그는 이 대통령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구원투수’ 내지는 중요 인물로 부각됐다.

2009년에 이루어진 박 전 대표의 이미지 분석은 노 전 대통령 이후 국민이 바라는 정치지도자의 이미지가 무엇이며, 그의 이미지가 향후 정치 구도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지 예측하고자 진행됐다. 그 결과 박 전 대표의 이미지는 “높고 훌륭한 연예인 같은 정치인”이었다. 대다수의 대중 정치인이 바라는 최상의 이미지다. 대통령에 버금가는 왕족이나 재벌 회장급의 정치인이자, 선대에서 이뤄놓은 뛰어난 업적을 승계한 재벌 2세의 모습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런 부류를 “가진 게 많고 지킬 게 있는 사람”으로 본다. ‘수성(守城)의 위치’, 즉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 때문인지 박 전 대표는 ‘원칙과 명분’, 그리고 안정과 질서를 이야기한다. 대중은 이런 사람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중의 심리를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박 전 대표의 이미지는 그를 지지·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세 집단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인식된다. 지지집단은 그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본다. 그런 그와 대립하는 정치인은 ‘삽질왕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정치적으로 박 전 대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를 ‘높은 정치인’으로 본다. 이들은 ‘참신한 다크호스 정치인’을 기대한다. 박 전 대표를 연예인 보듯 하는 비정치 성향의 사람은 과거 시민운동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와 대립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지지층 : 朴, 대통령 될 유일한 인물
박근혜 대세론의 핵심은 현재 대통령을 대체할 인물이 박근혜밖에 없다고 믿는 데 있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은 ‘박근혜 대세론’을 믿으려 하고, 또 그가 이명박 대통령을 대체할 인물이라고 본다. 그들은 박 전 대표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박 전 대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 인물로 뚜렷이 부각된다.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이나 표현을 매우 절제한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 자신의 생활·건강·이미지 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공인으로서 처신이나 생활이 깨끗하고 분명하다. 당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소신과 고집이 있다.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느긋함과 여유를 보인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강한 편이다.”

관련사진

photo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대세론’을 믿기보다는 ‘높은 정치인’과 대비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항마를 기대한다. 그들이 박 전 대표를 보는 시선은 다음과 같다.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이나 표현을 매우 절제한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자신의 생활·건강·이미지 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치밀한 계산 하에 움직인다. 구체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명분과 원칙을 앞세운다. 공인으로서 처신이나 생활이 깨끗하고 분명하다.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기득권이나 지지 세력만을 대표하는 정치를 한다. 전형적이며 구태의연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중의 입장에서 자신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잘 관리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기에 거리를 느낀다. 무엇보다 ‘높은 정치인’은 기득권이나 지지 세력만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이런 이미지의 인물은 마치 박제된 사람과 같다.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을 지닌, 가진 게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다. 학식과 권위를 두루 갖춘 매우 잘난 고위 공무원 같은 이미지다. YS 이후 대통령 선거에 대쪽 이미지로 계속 출마했던 이회창 의원을 연상케 한다. 그렇기에 박 전 대표를 ‘높은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박근혜 대세론’은 ‘이회창 대세론’의 반복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층 : 朴은 기득권, 지지층만 대변해
박근혜를 ‘높은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와 대비해 기대하는 사람은 ‘참신한 정치인’이다. 예컨대 이런 사람이다.
“민주화운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통 지배 세력(언론·부유층·보수지식인 등)을 바꿀 개혁가다.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즐긴다. 보통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정치인이다.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신선하고 산뜻한 사고와 행동을 보여준다. 양극화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 사회갈등의 현장에 직접 나타나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보다 미래가 좀 더 나아질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참신한 정치인이란 대중들이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 내일은 좀 나아질 것 같은 기대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살기 힘들다고 느낄수록 대중들은 이런 사람을 기대하고, 이 사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바란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대중들은 참신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한다.

2009년 조사에서 많은 응답자가 현실 정치인 중에서 이런 참신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거의 연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부각될수록 참신한 정치인을 찾고 싶은 그들의 마음도 더 뚜렷해진다.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더 결집되기 때문이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은 박 전 대표를 ‘연예인 정치인’으로 본다. 이 이미지는 박 전 대표가 언론에 전형적으로 투영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언론에 노출되는 모습과 마찬가지다. 겉으로 매우 훌륭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높은 위치의 공인이다.

그러나 ‘연예인 정치인’의 모든 활동은 항상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중요 사안에서 애매모호한 의견을 제시하며 원론적인 명분과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사람이 지향하는 정치적 원칙이나 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정치인은 자신의 입장에는 명분과 원칙이 있고, 또 이상적 모습이라고 믿기에 정작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기는 힘들다. 너무나 훌륭하기에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정치인이다. 대중들은 정작 이 사람의 역할이나 존재 이유, 혹은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럴 때 이 정치인은 위기에 처한다.

관련사진

photo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서울합동연설회.

박 전 대표를 연예인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들은 ‘시민운동 정치인’의 이미지를 바람직한 정치인으로 연상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전통 지배 세력(언론·부유층·보수지식인 등)을 바꿀 개혁가다. 과거의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기꺼이 배우려고 한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주위 사람들을 대한다. 양극화와 빈부격차 해소에 노력한다. 민주화운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순수한 동기와 열정으로 일을 한다. 잘못은 솔직하게 시인하고 책임을 진다. 공교육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방식이다.”

직접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시민 공동체 혹은 대안학교를 만들어 활동하는 적극적이고 인간적인 정치인이다. 놀랍게도 ‘시민운동 정치인’의 이미지에서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기에 노동운동을 하던 모습, 퇴임 후 봉화마을에서 벌인 생태운동을 떠올렸다. 이와 동시에 현재 한국의 정치권에서 더 이상 이런 인물이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중도층 :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말기를
박 전 대표를 ‘연예인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박근혜 대세론’은 관심 대상 밖이다. 왜냐하면 박 전 대표를 직접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인물’로 남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들이 정작 바라는 미래의 정치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그런 인물이다.

박 전 대표는 분명 ‘높고 훌륭하며, 인기 있는 정치인’이며 차기 대통령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단순한 여론조사 지지율은 대중의 마음속에 작동하는 심리를 전혀 알려주지 못한다. 박 전 대표를 반대하거나 연예인처럼 여기는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겠다는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전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대세론을 믿고 또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현재의 대통령을 ‘삽질왕자’ 수준의 인물로 본다. 그렇기에 박 전 대표는 현재의 대통령을 대체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대선 정국은 대세론을 주장하거나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반대하거나 연예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주도할 공산이 크다. 박 전 대표를 반대하거나 중도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이기 때문이다.

내년의 대선 정국에서 등장하는 정치인이 그들이 마음속으로 기다리는 박 전 대표의 대항마와 제대로 부합되기만 하면 현재의 ‘박근혜 대세론’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바로 ‘높은 연예인 정치인’에 대비되는 ‘참신한 시민운동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말이다. 혹자는 그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계승하면서 ‘참신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진 어떤 인물이라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박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대중들이 그의 경쟁자로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깜짝 등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swhang@yonsei.ac.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