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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개방 두려워 말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4호 30면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를 선보인 지 6개월 만에 국내 판매량이 27%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둔 시점에서 쉐보레의 성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랫동안 보호받아 온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경쟁체제에 대응할지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56년간에 이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을 돌아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만일 한국 시장에서 국내외 업체의 경쟁이 진작 벌어졌다면, 한국 자동차회사의 국제적 위상은 지금보다 높아졌을까. 1980~90년대 한국 소비자들은 경쟁력 있는 한국차를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까.

55년 한국에서 첫 자동차가 조립·생산됐다. 시발택시로 불리는 이 차는 미군 부대에서 남은 부품과 드럼통을 편 철판으로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한 1962년까지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당시 한국의 기술은 부족하고 생산성은 낮았다. 업계는 미국과 일본·유럽의 부품과 노하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부는 한국 시장에 새로 창출된 수요를 통해 장차 세계를 선도할 자동차회사의 탄생을 꿈꿨다. 정부는 우선 완성차 형태의 수입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강력한 수입제한조치를 취했다. 외국 자동차회사는 한국 파트너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이런 제한은 한편으론 현명했고, 한편으론 어리석었다. 긍정적인 측면은 이렇다. 한국에서 수입차 조립공장은 선진기술 학원의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한국 회사는 기술을 꼼꼼하게 배웠다. 처음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 안주하던 한국차는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외부 경쟁자가 없으니 더 좋은 차를 만들어야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낮은 품질의 국산차를 살 것인지, 높은 관세를 내고라도 뛰어난 수입차를 탈 것인지, 만족할 수 없는 선택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한국이 처음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경험한 건 80년대 말이었다. 그제야 북미의 안전기준을 통과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역시 경쟁력 문제를 절실하게 느낀 경험이 있었다. 일본차가 처음 미국에 들어왔을 때였다. 70년대 이후 최고의 차를 만든다는 미국의 명성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잠식하는 일본차에 맞서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더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차도 시장 점유율 경쟁을 경험하면서 품질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는 88년 품질, 디자인,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자신감을 얻어선지 미국에서 10년/1만 마일 보증수리 제도도 도입했다. 효과가 있었다. 2004년 미국의 자동차 전문조사업체 ‘JD 파워’는 종합평가에서 현대를 2위에 올렸다. 1위는 도요타였고 공동 2위는 혼다였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한국이 자동차 수입을 금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와의 경쟁을 일찍 경험했더라면 한국차는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한편에선 정부 개입으로 신생 산업인 자동차산업이 발전했다고 말한다. 반대 편에선 수입차와 경쟁했더라면 한국차의 발전과 혁신이 더 빨리 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기아차는 올 상반기 319만 대의 차량을 팔아 세계 4위 자동차회사가 됐다. 이런 수치를 통해 한국차의 품질은 입증된다. 이렇게 성장한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추측해 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개방된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수입차는 나날이 늘고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의 국내 점유율은 70%를 훌쩍 넘는다. 안방에서 처음으로 수입차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한국 업체는 이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까.



바비 맥길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저널리스트.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서 근무했다. 부산 거주 외국인을 위한 ‘부산 햅스(Haps) 매거진’ 편집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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