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공적자금 투입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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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마침내 한국.대한투자신탁의 부실을 공적자금을 넣어 완전히 털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주식시장의 추락을 어떻게든 막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부나 증권 관계자들은 그동안 시장 신뢰를 잃은 투신권을 이대로 두고는 주식시장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는 조기 정상화 필요성에도 인식을 같이해왔다. 이에 따라 투신권 부실의 핵심인 한국.대한투신에 공적자금 투입이란 '초강수' 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실적상품 손실은 투자자가 지는 게 원칙' 이라는 점을 내세워 투신권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시기를 미뤄왔다. 그러나 투신권 자금이탈이 계속되는 등 증시여건이 갈수록 악화되자 결국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공적자금 투입 규모.시기 확정은 5월 후로 미뤄졌다. 국민 세금을 넣는 만큼 무조건 집어주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철저히 실사한 뒤 꼭 필요한 만큼만 넣되 부실책임을 추가로 묻는 절차도 밟겠다는 것이다.

◇ 공적자금은 얼마나〓두 투신사의 고유계정은 각각 한국투신 3조5천억원, 대한투신 2조원의 부실을 안고 있다.

따라서 고유계정 부실을 청소하는 데만 적어도 4조~5조원이 필요하고, 정상 영업이 가능하도록 자본금을 늘려주려면 추가로 돈이 들어가야 한다.

이와 관련,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추가 공적자금 조성없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 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기존 64조원의 금융구조조정기금을 회수해 갖고 있는 7조원 중 일부를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돈은 파산한 나라종금 예금대지급용 등 대부분 쓸 곳이 이미 정해져 있어 가용재원은 많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다음은 자산관리공사.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의 회수율을 신속히 높이는 방안이다. 예보가 대지급한 자산을 묶어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만들어 팔거나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매각 일정을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모자라면 예보 등이 자체 채권을 발행하거나 국내외에 빌려서라도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 다른 투신(운용)사도 문제〓정부 계획대로 한국. 대한투신이 해결된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현대투자신탁 등 기타 투신(운용)사들도 부실 또는 잠재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태다.

지난해 이들 투신사는 2조5천억원의 대우채 환매손실을 결산에 반영했다. 자본금 3백억원의 군소 투신(운용)사 중 몇몇은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한남투신 인수에 이어 대우채권 손실로 멍든 현대투신에 대해서도 시장의 우려는 크다. 정부는 나머지 투신사들에 대해서도 증권금융채권 발행 등을 통해 유동성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대한투신 해결에 실기(失機)한 정부가 다른 투신사들의 처리도 미루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 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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