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돌 던질 채비를 갖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5면

참 아름다운 ‘선의(善意)’들을 경험한 한 주였습니다. 이 나라 동량지재(棟梁之材)들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책임지는 높으신 분이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에게 2억원이라는 통 큰 선의를 베푸셨다는 거잖아요. 훌륭한 분들은 역시 다릅니다. 뜻도 좋지만 행하는 법이 남다릅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 가르침에서 어긋나지 않지요. 행여 누가 알까 여러 번으로 나눠 여러 사람 손을 거쳐 현찰로 건넸습니다. 운이 없어 세상에 알려졌기에 거기서 멈췄지 그렇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선의가 전해졌을 터라지요.

 국민 대표들의 ‘집단 선의’도 목격했습니다. 그깟 성희롱 한번 한 걸로 곤경에 처한 동료 의원을 힘을 합쳐 구해냈습니다. 역시 예수님 가르침을 성실히 실천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절반이 넘는 의원이 죄가 있었나 봅니다(실제 비슷한 전력을 가진 분들이 있긴 있습니다). 111명의 죄 없는(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의원들만 돌을 던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행여 자신들의 선행을 누가 알까 봐 방청객과 기자들을 몰아내고 문을 걸어잠근 뒤 숨죽여 처리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선의는 ‘좋은 뜻’을 말하지만 법률 용어로는 좀 다릅니다. 선의 또는 악의처럼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그저 어떤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법학교수 출신의 교육감이고, 법을 만드는 의원들인 만큼 후자의 의미가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돈을 주는 것이 후보 매수행위로 오해받을지 인식하지 못했다거나, 동료 의원 구하기가 조폭 의리로 뭉친 패거리주의의 한 표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성이 나지요? 시니컬해지는 걸로 수틀리는 마음을 달래기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건 사전적 의미건, 법률적 의미건 간에 선의가 아닙니다. 범죄이자 죄악이지요. 그걸 선의라 믿을 때 이를 표현하는 다른 용어가 있습니다. ‘위선(僞善)’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각종 위선자들의 리얼리티 쇼를 시청하고 있는 겁니다. 위선에는 색깔이 없습니다. 상하, 좌우 구별도 없습니다. 오로지 더하냐 덜하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위선은 이데올로기의 옷을 입을 때 가장 큰 파괴력을 갖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라는 위선이 그랬습니다.

 그때 얘기 하나 할까요? 중국이 세계를 향해 문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 1979년 덩샤오핑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백악관 만찬에 미국 여배우 셜리 매클레인도 초대돼 덩샤오핑 옆에 앉았습니다. 그녀가 문화혁명 때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에선 최고권력자인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난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쫓겨가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사실은 아실 겁니다. 그때 한 오지 농촌을 방문한 매클레인은 백발의 전직 대학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토마토 밭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그런데도 대학에서 강의할 때보다 인민공사에서 일하는 게 더 행복하노라고 매클레인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학자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노라고 얘기했습니다. 말 없이 듣고 있던 덩샤오핑은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엽니다. “그거 거짓말입니다.”

 그런 위선에 속지 마십시오. 특히 좌우 어느 한쪽에 발 딛고 섰을 때 더 주의해야 합니다. 내 편에서 나오는 거라고 허위 덩어리로 뭉친 위선 콘서트에 무조건 따라 웃지 말아야 합니다. 내 편일수록 더 눈을 부라려야 합니다. 내 것, 내 믿음, 내 가치는 더욱 소중하니까요. 그것들이 위선으로 상처받아서는 안 되니까요.

 위선에는 좌우뿐 아니라 상하도 없다고 했지요? 젊은 세대라고 결코 위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젊은 시절 무심코 넘긴 위선의 사마귀가 자라 위선의 암 덩이가 됩니다. 그런 위선을 주렁주렁 매단 채 여러분들이 이 나라, 이 사회의 주역이 됐을 때 과연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런 여러분들에게 미래를 맡겼다가 여러분들의 후배들이 지금 여러분들처럼 또다시 낭패를 겪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몸 어디서 위선의 사마귀가 자라고 있는지 항상 살피십시오. 생길 여지가 없도록 경계하십시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고 할 때 자신 있게 돌을 던질 수 있도록 스스로 단련하십시오.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는 죄인들이 되지 마세요. 가차없이 던지세요. 예수님이 더욱 기뻐하실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