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 뜯어보면 엽기적 스릴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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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돼 읽힐만큼 사랑받는 덴마크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천 안데르센(1805~75). 그의 이미지는 환상적인 그의 동화처럼 아름답게 포장돼 있다.

그를 소재로 한 TV만화영화는 온화한 얼굴로 동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점잖은 신사의 모습을 그려낸다.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못배기겠다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이다.

작가의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찢어지는 가난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병, 못생긴 외모를 물려받았다. 지독한 열등감에 휩싸여 평생 결혼도 못한채 살았던 그는 세상을 향해 따스한 시선을 보내기는 커녕 증오심을 키웠다.

사생아를 낳은 할머니와 어머니, 매춘을 일삼던 숙모 등 부끄러운 가족과 정신병에 대한 공포가 일생동안 그를 따라다녔다. 작가로 명성을 떨친 후에는 자서전을 통해 가족사를 의도적으로 미화하기도 했다.

문학작품을 작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분위기에 젖은 독자들로서는 이런 숨겨진 이야기에 충격을 받을 법하다.

일본의 아동문학연구가 안나 이즈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 쓴 안데르센 동화 〈안데르센의 절규〉(황소연 옮김. 좋은책만들기. 7천원)를 펴내 그의 작품 속에 감춰진 내면세계를 분석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추악한 내면을 그려낸 책이다.

여기에 담겨있는 〈인어공주〉를 한번 보자. 원작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마녀에게 팔아버린다. 그러나 왕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인어공주 대신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한다.

결혼식 전에 왕자의 심장에 칼을 꽂지 않으면 이제 인어공주는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릴 운명이지만 스스로 희생을 감수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결말을 맺는다. 언니들이 전해준 칼로 왕자와 그 신부가 될 여자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이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한 여성에게 자신의 불행한 출생을 고백하는 등 동정을 구하면서까지 사랑을 갈구하지만 거절당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상대를 저주했다. 그래서 저자는 바뀐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포장하지 않은 진심이라고 단정짓는다.

〈성냥팔이 소녀〉도 마찬가지.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와 사는 소녀는 추위를 이기려고 팔아야 할 성냥을 한개비씩 태운다. 그때마다 아름다운 환상을 보지만 결국 소녀는 얼어죽고 만다. 새 책에서는 소녀가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와 함께 불타 죽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동화에는 안데르센의 가족 대부분이 등장한다. 특히 아버지는 안데르센의 실제 아버지처럼 술주정뱅이다.

안데르센은 이처럼 현실에서 부정하고 싶은 부모와 〈성냥팔이 소녀〉를 통해 화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술주정뱅이 정신병자인 아버지의 존재를 숨기고 지우고자 했던 심리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꿈을 키워준 아름다운 동화를 이처럼 섬뜩하게 만들어놓은 저자의 악취미에 독자들은 혐오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안데르센 동화 밑바탕에 흐르는 것은 바로 이같은 엽기적인 스릴러라고 주장한다.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킨 동화는 자신의 악마성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가면, 혹은 현실 도피심리의 발로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등장인물이 안데르센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엄지공주〉는 두꺼비.나비.두더쥐.제비 등 만나게 되는 모든 존재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이유는 오직 미모 덕분이다.
'덴마크의 오랑우탄' 이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못생겨 짝사랑 외에는 이성과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안데르센의 콤플렉스를 거꾸로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안데르센 동화는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내려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안나는 이 역시 저자가 한번도 행복을 느껴본 일이 없는 탓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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