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필요한 아이들 보금자리 차별 해소 방안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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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청 대회의실에서 토론자들이 공동생활가정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위기아동·청소년 보호하는 그룹홈 경영 ‘위기’

천안을 비롯해 충남지역 공동생활가정 상당수가 국고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다.

 2004년 12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천안 성환공동생활가정(천안시 구성동 소재). 6명의 청소년과 함께 생활하는 서미정(38·보육교사)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초(2명)·중(2명)·고교(2명)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생활비 때문이다. 식자재 비용이 크게 오르면서 적게 먹어도 식비 지출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서 교사는 식품을 구입할 때 할인점에서 홍보물을 유심히 봐뒀다가 행사 품목만 골라 장을 본다. 이를 눈치챘는지 아이들도 할인점 홍보물을 모아서 들고 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모두 먹성 좋은 남자아이들이다. 몇 달 전부터 장 보는 횟수를 줄이다 보니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먹는 경우가 잦아졌다. 여기에 우유와 빵 등 간식 비용도 절반으로 줄였다. 서씨는 “일반가정 아이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먹는 것 만이라도 풍성하게 차려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항상 미안할 따름”이라고 한숨 지었다.

 이렇게 생활이 어려워진 이유는 갈수록 오르는 생활물가 탓도 있지만 지원금이 갑자기 삭감되거나 제때 지원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매달 천안시에서 1인당 35만원의 생계비를 지원 하는데 이중 지난 2월 성환공동생활가정에 입소한 종환(가명·17)이의 생계비가 6개월째 지급되지 않고 있다.

 특히 6살에 입소해 6년째 생활하고 있는 상원(가명·12)의 경우 생계비가 6월부터 10만원이나 삭감됐다. 아버지가 최근 직업(경비)을 갖게 돼 경제적 능력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줄어든 생계비는 바로 아이들의 생활과도 직결됐다. 운영자가 생활고를 덜기 위해 할 수 없이 자비를 털어 부족한 비용을 채워 넣고 있다.

 성환공동생활가정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5명의 여자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꿈찬공동생활가정(천안시 다가동)은 수년째 국고지원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비지원 시설로 지정되면 1인당 인건비 1850여 만원(1년 기준)과 세대당 운영비 23만원(1달 기준), 초과근무 수당 등 4100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 받는다. 하지만 2009년 9월 개소한 이곳은 3년째 국고보조금 없이 5명에게 나오는 생계비로만 생활하고 있다. 더욱이 2명의 자매가 있는 이곳은 자매라는 이유만으로 10만원의 생계비가 삭감 지급되고 있다.

 여기에 얼마 전에는 주민센터가 2명의 아이들의 생계비에 대해 재심의(기초생활수급권자)를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결국 1명은 6월 6만원이 줄었고, 7월엔 또 다른 1명이 생계비를 받지 못했다. 부모가 재산이 있거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꿈찬가정 서지영 보육교사는 “부모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산이 있어도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강제 분리되거나 폭행 또는 방임으로 오는 아동들이 대부분”이라며 “생계비 삭감이나 중단에 대해 주민센터에 수차례 항의한 끝에 다행히 며칠 전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지원 확대·자립지원·생계비 현실화 필요”

6월 30일 현재 충남지역에는 모두 18곳의 공동생활가정이 있다. 천안이 9곳으로 가장 많다. 서산과 금산이 각각 2곳, 나머지 아산·보령·연기·예산·태안에 1곳씩 있다. 이 가운데 40%에 가까운 7곳(천안 3, 금산 2, 연기 1, 보령 1)은 국비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국비지원을 받지 못한 일부 공동생활가정은 아이들에게 나오는 생계비마저 늦어지거나 삭감 또는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부양의무자 확인조사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부모와 강제 분리된 아이들이 부모의 소득과 재산 때문에 생계비를 제때 받지 못한 것이다. 위기에 놓인 아이들의 현실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관된 잣대로만 들이댄 주민센터의 탁상행정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25일 천안시청 대회의실에서는 ‘지역 아동청소년 공동생활가정 현황과 발전 방향’이란 주제로 학계와 천안시의회, 시민단체가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시민단체 관계자와 정치인,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토론회를 경청했다.

 성환공동생활가정 박명희 시설장은 토론회에서 “공동생활가정에 나오는 한 달 운영비 23만원으로 아동 7명과 생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국비를 지원받지 못한 곳엔 하루빨리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운영비가 나오는 곳은 금액을 현실화해야 한다. 그나마 최소한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주어지는 입소아동의 생계비만이라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백석대 변미희 교수와 서울기독교대학 김형태 교수는 공동생활가정 발전방향으로 ▶직원들의 처우 개선 및 인력 보충 ▶정부지원 확대 및 현실화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상호 교류 ▶양육시설의 기능변화(공동생활가정으로의 전환) ▶아동·청소년 문제(학습·정서적·성적) 전문 치료와 교육 활성화 등을 꼽았다.

 충남도 사회복지과 황상연 아동복지담당은 “운영비 미지원 시설은 국비 확보를 통해 안정적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비가 어려울 경우 지방비 지원 등을 통해 운영비 지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움 문의=041-572-0560

글·사진=강태우 기자

◆공동생활가정=단·장기 보호, 치료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위한 가정형 복지시설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크게 증가했다. 이후 경기가 안정되면서 감소추세에 있다. 하지만 2004년 이후에도 매년 9000여 명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충남에선 186명(전체 1.2%)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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