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섭정 안 돼” 2차투표서 노다 몰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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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계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가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29일 자신이 지원한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이 당 대표 경선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2007년 당 대표 사임 당시의 모습. [중앙포토]

‘킹 메이커’ 오자와(사진)의 꿈이 산산히 깨지고 말았다. 자신이 총력을 다해 지원한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62) 경제산업상이 결선투표에서 패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1차 투표에서 큰 차이로 승리했지만 의원들 사이에 “이러다 오자와의 섭정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오자와 알레르기’가 순식간에 번지면서 1차 투표에서 2위였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으로 결선투표의 표가 몰렸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일 정치권에선 “오자와 그룹이 사실상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9) 전 대표가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노린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1년간 꼭두각시 총리를 내세워 섭정한 뒤 내년 9월의 당 대표 선거에서 총리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오자와는 현재 정치자금 관련 재판으로 기소돼 당내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다. 따라서 내년 봄께 1심에서 무죄를 얻어낸 뒤 화려하게 총리로 올라서기 위해선 너무 인기도 높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후보의 당선이 필요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인물이 가이에다였다.

 지난 26일 밤 여성 의원들과의 회식에서 오자와는 “왜 하필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입니까”란 질문을 받고 “그건 나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한다. 즉 1년 뒤를 내다본 포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오자와가 밀고자 했던 후보는 가이에다가 아니었다. 가이에다가 지난달 국회에서 “(경제산업상을) 그만두겠다고 해 놓고 왜 빨리 그만두지 않느냐”는 야당 의원의 추궁에 울음을 터뜨린 것을 지켜보면서 오자와는 “쯧쯧…저래서 표를 얻을 수 있을까”라고 한탄했다 한다. 하지만 그가 선호했던 고시이시 아즈마(輿石東·75) 참의원 의원회장, 니시오카 다케오(西岡武夫) 참의원 의장은 본인의 고사와 당내 반발로 옹립이 무산됐다. 이 때문에 오자와로선 내키지 않았지만 ‘가이에다 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었고, 애초 우려대로 결과는 참패였다.

 하지만 그는 둘째 노림수인 ‘반오자와’ 구도의 불식은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가이에다 후보가 총리가 되는 것이 최선이긴 했지만 비교적 ‘반오자와’ 색채가 옅은 노다 신임 총리의 등장으로 자신의 세력 유지는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노다 신임 총리로서도 비록 당선되기는 했지만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오자와 그룹 측에 당직과 내각 인사에서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파 의원들의 충성심이 앞으로 1년간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지만 그렇다고 노다 정권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롱런할 것이라 보는 시각은 더욱 소수다. 오자와 그룹 측은 노다 정권은 ‘1년짜리’라고 본다. 즉 어차피 진짜 최후의 승부는 내년 9월의 당 대표선거이며, 그때까지 어떻게든 전열을 재정비하겠다는 심산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오자와 이치로=27세인 1969년 자민당 중의원에 당선한 이래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일본 정계의 실력자. 자민당 소속이던 93년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지지자들을 이끌고 탈당한 뒤 수차례 당 해체와 창당을 거듭하며 일본 정국 흐름을 주도해왔다. 킹 메이커, 정치 9단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06년 민주당 당대표에 취임했다. 2009년 8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는 데 기여했지만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총선 직전 대표직에서 사임해 총리에 오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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